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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후질서 부정으로까지 치닫는 日 역사도발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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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후질서 부정으로까지 치닫는 日 역사도발 행보

입력
2015.11.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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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과거사를 부정해온 일본이 20세기 전후체제의 출발점이 된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까지 검증하겠다고 나섰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집권 자민당은 19세기 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부터 도쿄재판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검증하는 가칭 ‘전쟁 및 역사인식 검증위원회’를 창당 60주년을 맞아 29일 아베 신조 총리 직속기관으로 설치한다고 한다.

위원회가 정면으로 겨누는 도쿄재판은 A급 전범 25명을 단죄함으로써 이후 일본과 연합군 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이끈 재판이다. 여기서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7명이 교수형을, 16명은 종신형을 받았다. 아베 총리가 정치적 지표로 삼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도 A급 전범 용의자로 수감됐다 간신히 기소를 면했다.

일본이 위안부 강제동원, 난징학살 등을 부정해온 데 이어 도쿄재판까지 검증하겠다는 것은 미국이 주도한 전후질서를 통째로 부정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 도쿄재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전범국에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자신들의 정체성을 스스로 뒤집는 행위이기도 하다. 위원회는 이를 의식한 듯 검증은 하되 결과물은 작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미국을 의식해 떳떳하게 보고서도 내지 못하면서 숨어서라도 역사를 바꾸겠다는 위선이 가증스럽다.

일본이 거침없이 역사도발을 계속하는 데는 나치세력을 철저히 청산한 뉘른베르크재판과 달리 도쿄재판이 정치적 논리로 흘러 전범 단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탓도 크다. 냉전 논리로 히로히토 일왕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일본을 적국에서 하루아침에 동맹국으로 끌어안은 미국의 책임이 적지 않다.

아베 총리가 도쿄재판을 부정하려 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2006년 자신이 쓴 ‘아름다운 나라에’에서 “A급 전범은 사후법에 의해 처벌된 것으로 국제법상 무효라는 논의가 있다”고 했고, 2013년 중의원에서는 “연합국 측이 승자의 판단에 따라 단죄했다”고 주장했다. 참의원에서는 “침략의 정의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고 해 한국 등의 반발을 불렀다.

도쿄재판까지 문제 삼겠다는 아베 정권의 속내는 전쟁포기와 군대보유 금지를 규정한 평화헌법 개정에 있다. 평화헌법의 산파역을 한 전후체제를 부정함으로써 이를 헌법개정의 근거로 몰고 가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3월 중의원에서 “(평화헌법) 원안을 연합국군총사령부의 문외한들이 8일만에 만든 물건”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일본의 역사인식이 이렇게 퇴행으로 치닫는다면 한일 정상회담 이후 우리가 기대하는 위안부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더불어 어렵게 계기를 만들었던 한중일 협력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일본은 정말 각성할 수 없는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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