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화여대는 정부 사업 ‘3관왕’ 타이틀을 얻었다. 교육부에서 올해 신설한 주요 대학재정 지원 사업인 프라임(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 소형, 코어(대학 인문역량 강화) 사업, 평생교육 단과대학 육성사업에 모두 선정되며 비판적으로 얻게 된 타이틀이다. 이 밖에도 이대는 지난해 7월 선정된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ACE 사업)을 올 들어 본격 시행하고 있고 K-MOOC 사업, BK21 사업 등 각종 정부 주도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학교측의 이런 움직임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 학교측이 목을 매고 있는 정부 사업을 비즈니스의 일환으로 보기 때문이다. 즉 학생들은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학교가 정부 사업에 적극 뛰어들면서 학과 통폐합이나 교과목 조정 등을 졸속으로 진행하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학생들은 이 같은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올해 초 프라임 사업 선정 당시 학생 5,000여명이 사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며 서명 운동을 벌였고 일부 학생들은 사업 통과를 막기 위해 밤샘 농성까지 했다. 이대가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에 선정됐을 때 급기야 학생들의 불만이 폭발해 시위로 이어졌고 총장 퇴진 요구로 번지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측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막무가내식 사업 신청을 한다고 보고 있다. 한학생은 “프라임과 코어 사업 지원 내용을 보면 이대만의 차별성이 부족하다”며 “지원 기준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최경희 총장은 “공대가 전체의 10% 밖에 되지 않아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프라임 사업에 지원했다”며 “우리가 지원하지 않은 사업도 많다”고 해명했다.
그만큼 정부 사업 참여에 대한 학교와 학생들의 시각차가 크다. 이대 사태가 보여주듯 이제는 학교 울타리를 넘어 사회 문제로까지 번진 대학들의 정부 지원 사업 참여의 문제점을 짚어 봤다.
기댈 곳은 정부 지원금뿐 … 돈줄 잡기 경쟁
대학들이 정부 지원 사업에 적극 참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학생 수 감소로 등록금 수입이 예전 같지 않으니 외부 사업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저출산의 영향으로 대학생 숫자는 2011년 이후 계속 줄어들어 올해 351만6,607명으로 집게 됐다. 올해는 전년 보다 9만1,464명이 줄었다.
이 같은 감소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교육부는 이를 감안해 대학 정원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대학 등록금은 5년째 동결됐다.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 시행한 ‘반값 등록금’정책으로 국가 장학금이 도입된 이후 전국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 가운데 99%에서 대학 등록금을 동결 또는 인하했다.
그 바람에 많은 대학들은 누적 적립금이 줄어 드는 상황에서 정부 지원에 더욱 기대고 있다. 지난달 31일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지난해 기준 전국 150개 사립대의 교비회계 누적 적립금이 7조9,591억원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고 밝혔다.
반면 국고 보조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 3월 대학교육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사립대 국고보조금이 2010년 2조7,185억원에서 2014년 4조6,791억원으로 1조9,606억 원 늘어났다. 그만큼 사립대 전체 수입에서 국고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2010년 13.0%에서 2014년 19.7%로 6.7% 포인트 올랐다. 이는 곧 대학들의 재정 구조에서 등록금보다 정부 지원금 비중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대학들은 각자 교육 플랜보다 정부 눈치보기에 급급할 수 밖에 없다. 교육부는 지난해 교육개혁 6대 과제를 선정하면서 고등교육 관련 과제로 취업에 방향을 맞춘 사회수요 맞춤형 인력양성, 일-학습 병행제 확산, 선취업 후진학 활성화를 제시했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과 프라임 사업, 코어 사업 등은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따라 진행된 사업들이다.
여기 맞춰 해당 사업에 참여한 대학들은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이공계 수요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낮은 인문계나 예체능 계열 학과의 정원을 줄이거나 아예 학과를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이공계 정원을 늘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수, 교직원 및 학생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다 보니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대학의 지나친 정부 사업 참여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대학이 ‘취업 학원’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장 논리에 따른 학과 구조조정 … ‘취업학원’ 오명
학과 통폐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정부 주도 사업이 프라임(PRIME) 사업이다.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 대학 사업(Program for Industrial needs-Matched Education)의 영문 머릿글자를 딴 이 사업은 취업에 도움될 만한 신기술이나 융합 학문 중심으로 학과를 개편하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숙명여대 원광대 상명대 등 21개 대학을 선정해 올해부터 3년간 총 6,000억원을 지원한다.
프라임 사업에 선정된 건국대는 대대적인 학과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지난 5월‘KU융합과학기술원’, ‘상허생명과학대학’을 신설하고 동물생명과학대, 생명환경과학대, 생명특성화대를 통폐합하는 학사구조개편안을 내놓았다. 건대신문에 따르면 신설 단과대학과 공과대학을 제외한 모든 단과대학의 입학정원이 감소했다. 정치대 입학정원이 가장 크게 줄었고 부동산학과는 경영대학으로 편입되며 선발인원이 예전보다 42% 줄었다.
지난해에도 건대는 영화학과와 영상학과를 합쳐 영화애니메이션 학과를 만들고, 텍스타일디자인학과와 공예학과를 합쳐 리빙디자인과를 만드는 등 학과 통폐합을 실시했다. 건대 예술디자인대학 학생회 정은진(24?가명)씨는 “예체능을 다른 단과대처럼 취업률로 평가하는 것은 평등하지 않다”며 “미대의 낮은 취업률이 대학평가에 방해가 되면 미대 인원축소로 해결 할 수 있는데 통폐합으로 소속을 변경해버리는 것은 미래를 보지 않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성신여대는 프라임 사업 때문에 내부 분규를 겪었다. 학교가 내년부터 4개 분야, 8개 단과대학, 48개 학과로 학사 구조를 개편하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침이 문제였다. 논란 끝에 폐합되는 학과는 없었지만 단과대학 중심의 개편 뒤 ‘청정융합에너지공학과’ 등 공학과를 신설했다. 또 ‘휴먼웰니스 대학’, ‘뷰티산업국제대학’, ‘지식서비스공과대학’도 신설했다. 반면 인문과학대학 소속학과들은 6~13명의 인원을 줄였다.
이 과정에서 학교측이 학생들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것이 학생들 주장이다. 구조조정 대상인 생활문화소비자학과에 재학중인 김선지(가명?24)씨는 “학교의 의견수렴 과정은 하나마나였다”며 “사전 자료 공개가 없었고 지도교수들이 배석한 설명회에서 학생들이 부담을 느껴 제대로 질문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신여대 관계자는 “학교 간 경쟁이 심해서 자료를 미리 공개할 수 없었다”며 “학과별 의견 수렴도 거쳤고 2017년 입학생부터 적용되므로 재학생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비단 프라임 사업이 아니어도 대학들은 돈이 되지 않는 비인기 학과를 주저 없이 통폐합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관련 없는 학과와 통폐합되며 원치 않는 공부를 하거나 학교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대학들이 학과 통폐합 방안을 발표할 때마다 학생들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다.
프라임사업에서 탈락한 중앙대는 이보다 앞서 2008년 두산그룹에 인수된 뒤 학과 통폐합을 적극 진행했다. 2010년 18개 단과대학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학 46개 학과로 통폐합했다. 주로 취업률이 저조한 인문?예체능 계열을 줄였고 비교민속학과, 아동복지학과, 가족복지학과, 청소년학과 등은 폐지됐다. 이후에도 중앙대는 프라임 사업을 신청하며 인문계를 감축하고 이공계를 늘리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화여대의 경우 전통의상학과 학생들이 패션의상학과와 통폐합에 반대해 서울 광화문에서 시위를 벌였다. 서일대 문예창작학과 학생들도 공업계열인 미디어출판학과와 통폐합이 결정된 뒤 집단 반발했다.
화를 부르는 졸속 행정 … 의견 수렴은 사치
대학의 정부 사업 참여에 대해 대학만 몰아 붙일 일은 아니다. 정부가 주도한 대학재정지원사업에 대해 ‘졸속행정’이란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정부의 사업계획이 공고된 후 대학의 신청을 받는 데 걸리는 기간이 두 세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대학들도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을 충분히 거치지 못해 일방추진 논란을 빚게 된다.
프라임 사업의 경우 지난해 12월 기본계획 확정 후 3개월 뒤 사업계획서 접수를 마감했다. 코어 사업은 접수 신청부터 마감까지 기간이 2개월이었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은 지난 1월 1차 공고를 내고 5월에 선정 대학을 발표했으며 2차 공고는 5월에 내고 7월에 선정 대학을 발표했다. 공고에서 선정까지 1차는 4개월, 2차는 2개월 걸렸다.
이 과정에서 의견을 낼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학생들이나 교수들의 반발이 만만찮다. 창원대는 교수회에서 실시한 ‘교육부 평단사업 찬반 투표’에서 반대가 66%였다.
이대 사태의 쟁점이었던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도 학생들로부터 4개월 만에 계획을 마련한 졸속 사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대는 의견 수렴이 없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뒤늦게 학내 구성원들과 소통하려고 시도했으나 워낙 반발이 거세 결국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을 철회했다. 이대 홍보팀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소통 부재”라며 “사업 선정 과정에서 여러 의견을 담아내지 못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학교 측과 면 대 면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취업률로 재단되는 정부 사업에 대학 정체성도 ‘흔들’
대학의 정체성 훼손도 대학재정지원사업의 또다른 문제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대학재정지원사업 평가지표를 분석해본 결과 사업별 목적이 서로 다른데도 평가지표가 80%이상 유사하다. 그렇다 보니 각 사업에 참여하는 대학들은 평가지표에 맞춰 비슷한 방향으로 계획을 수립할 수 밖에 없다. 박거용 상명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부터 취업률을 대학 재정지원사업 평가 지표에 집어넣어 고용 창출 책임을 대학에 전가하면서 대학 자율성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스, 코어, 프라임 사업의 경우 전임교원 확보율, 학생 충원률, 졸업생 취업률 등 비슷한 평가지표를 통해 대학을 선정한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들 세 가지 사업의 평가지표가 각각 83%, 56%, 79% 정도로 대학구조개혁의 평가지표와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 보니 각 대학들이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사업 계획안을 내놓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교육관련 단체 등은 이런 폐단을 막으려면 정부 지원 사업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 지원 사업의 경우 돈은 돈 대로 들이고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 6월 대학교수 15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교육부의 재정 지원 사업이 교육과 연구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70.4%였다. 전국 공과대학 학장들도 지난 7월 정기총회에서 “정부 가 주도하는 연구과제 선정에 문제가 많다”며 재정 지원 사업 혁신, 대학 자율성 강화를 촉구했다.
대학별 비전과 자율성 살린 ‘백년대계’가 해법
각 대학들은 이 같은 정부 지원 사업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대학이 혜택을 볼 수있는 총괄 지원 방식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대학 총장들은 올해 하계 세미나에서 “개별 사업에 선정된 대학에 재정 지원을 하는 방식 말고 기본 요건을 갖춘 대학에 일정 수준의 지원을 해주는 총괄지원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했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 지원 사업의 문제는 정부가 사전 평가해 선정하는 방식 때문”이라며 “교육·연구 여건 등에 따른 재정지원 요건을 공식화 해서 사후 평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즉, 일정 기준을 맞춘 대학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학내 구성원들과 사용처를 논의해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더불어 기존 상명하달식 방식에서 벗어나 대학이 사업모형을 자율 설계하는 방식의 사업계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주도의 일괄 지원 사업은 각 대학별 상황과 비전을 고려하기 어렵다. 정부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학교의 책임과 권한을 늘려 학내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된 자율적 경영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는 이 같은 지적을 감안해 지난 7월 14일 에이스, BK21 플러스 사업 등 대학재정지원사업 10개를 연구, 대학(전문대) 특성화, 산학협력, 대학자율역량 강화 등 4개 부문으로 통합해 진행하는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반 교수는 “재정지원 사업을 통합하는 것은 옳지만 지원 금액 자체가 적고 정부의 평가지표에 좌우되는 상황에서 투자대비 효과를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며 “정부가 돈줄을 쥐고 대학을 통제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유경 인턴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
한설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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