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티’는 ‘배꼽이 보일 정도로 아래의 길이가 짧은 티셔츠’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듣는 사람도 ‘배꼽티’가 ‘배꼽을 가리는 티셔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티셔츠가 대부분 배꼽을 가리는 형태라면, ‘배꼽을 가리는 티셔츠’는 그냥 ‘티’ 혹은 ‘티셔츠’라 하면 그만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 ‘목티’와 ‘발목양말’은 무슨 뜻일까? ‘티셔츠’와 ‘양말’의 일반적인 형태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거다. ‘목티’는 ‘목을 감싸는 티셔츠’일 것이고, ‘발목양말’은 ‘발목을 감싸지 않는 양말’일 것이다.
이처럼 유별나거나 특별한 것을 가리키는 낱말이 많아지는 건 그만큼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구별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말은 자칫하면 차별의 말이 될 수 있다. ‘여성’과 ‘지방’처럼 사회성을 띠는 낱말이 포함된 말일수록 그렇다.
‘여성 대통령’, ‘여성 장관’, ‘여성 의원’ 등의 말이 쓰인다는 건 현실 정치에서 여성의 역할이 제한되어 온 현실을 보여준다. ‘여성 장관’에 대응하는 ‘남성 장관’이란 말이 쓰이지 않는 현실에서 ‘여성 장관’은 차별의 말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 배우’와 ‘여성 장관’이란 말의 사회적 의미는 다르다. ‘여성 배우’는 ‘남성 배우’와 함께 ‘배우’를 구별하여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대학’과 ‘지방정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에 대응하는 말인 ‘지방정부’는 서울을 포함한 전 지역의 지방 자치 단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지방대학’에 대응하는 보통명사 ‘중앙대학’이 없는 현실에서, ‘지방대학’이란 말에는 ‘서울에 있는 대학’과 ‘서울 아닌 곳에 있는 대학’ 간의 차별 의식만 웅크리고 있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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