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ㆍ부동산 혼란 사전대비 소홀 탓
정책 일관성 유지하되 늘 변화ㆍ성찰 필요
먹고 사는 문제도 유능하다는 것 보여줘야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는 보수가 유능하고 진보는 무능하다는 통념이 퍼져있다. 오래 전부터 보수세력이 반대 진영을 공격하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동원한 전략이다. 객관적인 지표로 나타난 실상은 그 반대다.
정부의 경제업적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이 만든 개념으로 ‘경제업적지수’라는 게 있다.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상승률, 실업률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이 지표를 보면 김대중 정부가 82로 가장 높고, 노무현 정부 68.9, 박근혜 정부 63.2, 이명박 정부 43.1이다. 경제적 업적뿐 아니라 사회통합과 관련한 수치를 포함한 보다 포괄적 평가를 위해 고안된 ‘사회경제고통지수’도 진보정부가 더 좋은 성과를 내었음을 보여준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성장정책의 근간은 ‘낙수효과’였다. 대기업과 부유층 부를 먼저 늘려주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양극화와 불평등만 심화됐을 뿐 경제와 일자리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기간에 기업소득 증가율이 가계소득 증가율을 추월했고 2016년에는 5배 이상 차이가 벌어졌다.
그 대안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고 나온 소득주도성장은 수년 전부터 세계노동기구(ILO)가 정식으로 제안한 정책이다. 정규직을 늘리고 저임금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면 소비가 늘어나 기업들의 돈벌이도 나아지고 경제도 성장한다는 논리다. 최저임금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은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정책이다.
하지만 첫 단추인 최저임금 정책부터 난관에 부닥쳐 있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공약했을 만큼 양극화 해소와 저임금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정부가 사회적ㆍ경제적 파장 예측을 소홀히 해 혼란을 키웠다는 데 있다. 영세자영업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했더라면 재정지원과 임대료, 카드수수료 인하 등은 최저임금 인상과 동시에 나왔어야 했다. 청와대의 현장 행보도 둑이 터지기 전에 이뤄졌어야 할 조치다. 최저임금 정착을 위해서는 기득권층의 양보와 고용당사자간 타협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정부의 노력도 들어본 바 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그렇다. 정부의 원칙과 의지는 바른 것이었지만 각박한 경쟁 속에 청춘을 저당 잡힌 정규직의 ‘공정’심리는 읽지 못했다. 이들의 반발을 집단 이기주의로 비난하고 연대의 정신만 호소하기에는 기성세대의 잘못이 너무 크다. 가상화폐를 둘러싼 혼란도 투자자들의 주력인 ‘흙수저’들의 불안감과 상실감을 파악하지 못한 데서 기인하다.
더 걱정되는 것은 부동산 정책이다. 정부는 지금 “제발 미친 집값을 잡아달라”는 쪽과 “보유세를 올리는 건 세금폭탄”이라는 쪽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다.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지 않으니 실효성 있는 처방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에 실패했던 청와대 비서관은 “더 이상의 실패는 없다”고 했고, 주무 장관은 “집값은 반드시 잡겠다”고 공언했지만 이제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수정부는 실물경제에 아주 무능하지 않으면 경제문제에서 크게 비판 받지 않았다. 늘 성장과 시장을 강조하는 터라 국민에게 능력이 과대포장 돼 비치기 때문이다.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진보정부는 경제문제에서 더 섬세하고 복잡한 싸움을 해야 한다. 일정한 성장을 해야 하고 분배도 신경 써야 하며 무능론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전에 부작용과 위험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치밀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경제와 시장을 관리하고 장악하는 실력이 필요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회고록 ‘운명’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우리는 실패한 정부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떠났다. 진보로부터 진보진영 전체를 추락시킨 장본인인 것처럼 비난을 들었다”고 했다. 그런 회한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찰해야 한다. 정책 방향의 일관성은 확고히 유지하되 잘못을 바로잡고 대안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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