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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부 방사능 안전 권고 못 믿어… 피난민 피폐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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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부 방사능 안전 권고 못 믿어… 피난민 피폐한 현실

입력
2015.03.0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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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안전 고려 젊은 부부들 남아

향수병ㆍ우울증 시달리며 버텨

돌아간 90세대 대부분이 노년층

아이들 웃음소리 사라지고

대가족 흩어진 현실에 분노

후쿠시마현 다무라시 후네히키 지역에 조성된 가설주택단지.
후쿠시마현 다무라시 후네히키 지역에 조성된 가설주택단지.
가설주택에서 만난 마사오(오른쪽), 아유미(왼쪽) 부부, 마사오씨가 후쿠시마 원전의 사진을 보여 주며 일본 내 모든 원전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설주택에서 만난 마사오(오른쪽), 아유미(왼쪽) 부부, 마사오씨가 후쿠시마 원전의 사진을 보여 주며 일본 내 모든 원전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가설주택에서 당장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로 내 고향 미야코지(都路)의 아름다운 경치와 신선한 공기가 모두 사라졌다. 갈 곳이 없어진 우리 부부는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칼바람이 매섭던 지난 3일, 후쿠시마현 다무라(田村)시 후네히키(船引) 지역운동장에 조성된 가설주택. 2011년 3ㆍ11 대지진 때 미야코지에서 피난 온 아유미 요코다(58)씨는 감정이 복받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부부교사였던 남편 마사오 요코다(74)씨와 25년 전 도쿄에서 미야코지로 이주했다. 전원생활을 꿈꾸며 결단한 귀촌은 3ㆍ11 전까지는 성공적이었다. 이 지역 학생들에게 남편과 부인은 각각 화학과 영어를 가르치며 제2의 인생을 만끽했다. 그러나 지금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취미인 낚시도 할 수 없게 된 마사오는 스트레스로 뇌혈관이 터져 17일간 병원에 실려가는 위급한 상황도 겪었다. 아유미씨는 “한국도 원자력발전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도 원전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했지만 100% 안전할 수는 없다는 게 입증되지 않았냐”며 “고향을 잃기 싫다면 원전을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간곡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일본 부흥청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집계에 따르면 2011년 도후쿠 대지진 이후 피난생활을 하는 주민은 아직도 22만9,897명(1월15일 기준)에 이른다. 미야코지 피난민들이 모여있는 후네히키 가설주택단지에만 270세대가 남아있다. 후쿠시마현에서 파견된 무라코시 가즈미(村越一三ㆍ65)는 “90세대는 고향에 복귀했지만 나머지는 아직 정부 권고를 믿지 않고 남아있다”며 “향수병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하소연을 듣다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돌아간 90세대는 대부분 노년층이다. 젊은 부부들은 자녀들의 안전을 고려해, 미야코지 보다 편의시설이 많은 후네히키에 남으려는 분위기다. 하지만 내년 3월까지는 가설주택을 모두 떠나야 한다. 후쿠시마현이나 다무라시도 가설주택을 무한정 운영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미야코지의 방사능 수치가 정부의 안전기준치(시간당 0.3 마이크로시버트)보다 높아 체류기간을 1년 연장한 상황이다.

이웃 가설주택의 50대 여성은 “내년에 가설주택을 떠나야 하지만 돈이 있는 사람은 도시의 새 집으로 떠나고 돈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미야코지로 돌아갈 수 밖에 없지만 오염된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싫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후네히키 지역민들은 방사능 위험이 과장됐다는 입장이다. 시내에서 만난 70대 건설업자는 “이곳은 방사능 수치가 시간당 0.07마이크로시버트로 오사카(大阪)나 간사이(關西) 지역보다도 낮다”면서 “외국언론이 너무 과장을 한다. 아사히신문 같은 일본 언론도 이상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피난민들이 돌아가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이곳에서 친구가 생기고 적응했기 때문이다. 방사능은 태평양에서 바람이 불면 산악지역인 미야코지(都路)를 지나 분지인 다무라(田村)시를 건너뛰고 서쪽으로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그의 표정에서 지역경제 붕괴에 대한 우려가 묻어났다.

안전하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야코지행 택시에 오른 기자는 불안감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후네히키로부터 40분 거리의 미야코지 입구에 들어서면서 흉가처럼 방치된 집들이 ‘유령마을’같은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주택가에 설치된 방사능 측정기는 시간당 0.317 마이크로시버트를 기록해 정부 안전기준치를 약간 넘어서고 있었다. 이곳 주민 아베 미츠코(66)에게 동네 상황을 물었다. “세대당 한 개씩 방사능 측정기를 가지고 다닌다. 작년까지만 해도 문밖에 나가면 ‘삑삑’소리를 내 깜짝깜짝 놀랐지만 지금은 제염작업을 많이 해서 주택가는 좀 괜찮다”며 “주거지는 간신히 안전치 전후로 낮아졌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0.7까지 치솟는 곳도 많아 여생이 얼마 안 남은 노인들만 돌아와 사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아베 씨는 “정부는 원전사고를 딛고 ‘부흥’을 강조하고 있지만 피난민들에겐 마음의 부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뉴스를 보면 거짓말도 많다”며 “40년이 지나면 아름다운 마을로 되돌릴 수 있다고 하지만 어떻게 믿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오는 길, “고향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대가족이 흩어진 점을 가장 분노한다”는 이 동네 할머니의 표정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후쿠시마(미야코지ㆍ후네히키) 글ㆍ사진=박석원기자 spark@k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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