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국민의 신임을 배반
대통령 권한 남용 사실 명백”
“노무현, 기자회견 발언 수동적
재신임 발언도 실천하진 않아”
측근들과 공모 관계로 엮인 朴
부패범죄 연루 사실도 차이점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됐지만, 13년 전 탄핵심판에 회부됐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기사회생했다. 두 사람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부분은 법 위반의 ‘중대성’을 두고 재판관들이 내린 엇갈린 판단이다.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박 대통령)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로 봐야 한다”고 못박았다.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중대해, 피청구인을 파면해서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설명이다. 헌재는 국회가 제기한 탄핵사유 중에서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허용해 이권을 취하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사실이 명백하다고 봤다.
법을 위반했다고 곧바로 탄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헌재는 2004년 당시 노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어긴 사실을 인정했지만 파면은 과하다고 판단했다. ▦기자회견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한 행위 ▦선거법을 ‘관권선거시대의 유물’로 폄하한 행위 ▦자신의 재신임을 국민투표로 묻겠다고 한 행위에서 공직선거법 위반과 법치주의 위반이 인정됐다. 그러나 헌재는 “모든 법 위반의 경우가 아니라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이 있을 때만 탄핵할 수 있다”고 제한을 뒀다. 정파적 이유로 탄핵 소추가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탄핵 결정의 판례를 만들었던 셈이다.
재판부는 당시 ▦적극적, 능동적, 계획적으로 헌법상 법치주의 원리와 민주국가 원리를 위배한 경우 ▦뇌물수수나 부정부패 등의 법률 위반으로 국민신임을 저버린 경우를 탄핵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으로 봤다. 노 전 대통령의 문제 발언은 기자회견 질의응답 자리에서 나왔거나 선관위 처분에 대응해 나온 수준이라 수동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국민투표로 재신임 묻겠다는 발언도 이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아 중대 위반사유가 아니라고 봤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법 위반이 적극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 때문에 중대성이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인정됐다. 재임기간 내내 최순실씨에게 내부문건을 유출하는 등 ‘비선(秘線)’의 국정개입을 허용해 헌법상 대의민주주의 원리를 크게 손상했고, 최씨 측 회사가 대기업 일감을 수주할 수 있도록 직간접적으로 대통령 권한을 행사했다고 결론 내렸다. ▦언론에서 비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때 관련자를 단속하는 방식으로 위법행위에 적극 가담한 점 ▦대국민 담화를 뒤집고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은 점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한 점도 헌법수호 의지가 전무하다고 판단한 근거로 작용했다.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이 대통령과 공모관계로 엮여서 부패범죄에 연루된 사실도 노 전 대통령 때와는 차이가 있다. 박 전 대통령 지시에 따른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정호성 청와대 비서관 등이 구속된 사실을 심각한 사안으로 판단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 때는 측근 비리가 발생했지만, 대통령이 관여한 바가 없어 탄핵사유로 볼 수 없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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