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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보증금 싸고 깨끗한… 달팽이집 예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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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보증금 싸고 깨끗한… 달팽이집 예쁘죠"

입력
2014.08.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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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 유니온, 주택협동조합 창립 110명의 출자금 8200만원 가지고

주택을 장기 임대해 대안공동체 마련 보증금 75만~100만원에 월세도 싸

김해랑(24)씨가 13일 오후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이 마련한 서울 남가좌동 ‘달팽이집’ 자신의 방에서 이삿짐을 풀며 활짝 웃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김해랑(24)씨가 13일 오후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이 마련한 서울 남가좌동 ‘달팽이집’ 자신의 방에서 이삿짐을 풀며 활짝 웃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여긴 신발장이 넓어서 좋다! 방도 깨끗하고!”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한 신축 빌라 202호 작은방에 이삿짐을 풀던 이혜빈(35)씨는 연신 싱글거렸다. 9년 전 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 자취 경력만 7년인 이씨는 첫 자취방이었던 왕십리 원룸촌의 반지하방을 떠올렸다. 벽에는 곰팡이가 피고 벌레가 나오며, 밤에는 가로등도 없이 어두워 치안이 불안한 곳이었다. 직전에 살았던 직장 근처 불광동의 방 두 개짜리 집은 곰팡이와 벌레는 없었지만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 가격이 부담이었다. 결국 룸메이트를 구해 절반을 내고 살았다. 이번에 이사온 방은 전에 살던 방과 크기는 비슷했지만 보증금은 75만원에 월 30만원이다. 공용 공간인 욕실과 주방에 자신의 가재도구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이사를 마친 이씨는 “앞으로 살게 될 동네니 ‘핫 스팟’을 찾아야겠다”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이제 6시간씩 기차 탈 일은 없겠네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게 꿈만 같아요.” 대학생 김해랑(24)씨는 지난 13일, 부푼 마음을 안고 201호 큰방에 짐을 풀었다. 대학 입학 후 2년간 하숙 생활을 했던 김씨는 3학년이 되던 2011년부터 충남 아산 집에서 서울 용산구 청파동 학교까지 KTX로 매일 통학을 했다. 오전 6시 전에 일어나고, 밤 11시 넘어 막차를 타고 돌아가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한 달에 KTX 정기권으로 30만원 가량 들었지만 학교 앞 하숙 비용 월 50만원보다는 싸다는 생각에 KTX 통학으로 바꿨다.

하지만 지난 6월부터는 KTX 통학도 가격이 부담돼 서울 상암동 아르바이트 회사까지 누리로 정기권을 끊어 다녔다. 하루 통근 시간은 6시간으로 늘었다. 그런 김씨가 이사온 방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 40만원. 룸메이트와 함께 쓰는 큰 방이라 보증금 50만원에 월 20만원만 내면 된다. 이씨와 김씨는 모두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청년에게 주택을 제공하겠다’는 민달팽이 유니온 프로젝트의 첫 수혜자들이다.

서울의 주거비는 비싸다. 대학생이나 사회에 막 자리잡기 시작한 청년들은 수백~수천만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낼 돈이 없다. 지난해 발표된 민달팽이 유니온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청년의 14.7%, 서울 청년의 36%가 주거빈곤 상태에 놓여있다. 이런 현실에서 지난 3월 민달팽이 유니온은 주택협동조합을 창립하고 조합원 110명(현재 123명)을 모집해 대안공동체 마련에 나섰다.

조합원들은 우선 출자금 8,200만원으로 지난해 새로 지은 남가좌동 빌라의 12평(40.39㎡)짜리 집 두 채를 장기 임대했다. 빌라 한 채마다 2명이 사용하는 큰방(14.16㎡)과 한 명이 쓸 수 있는 작은방(9.14㎡)이 각각 하나씩 마련됐다. 큰방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 40만원, 작은방은 보증금 75만원에 월 30만원이다. 입주자들은 주방과 화장실, 테라스 등을 함께 사용하게 된다. 집 없는 ‘민달팽이’들의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준다는 의미로 ‘달팽이집’이란 이름이 붙었다.

달팽이집과 크기가 비슷한 이 지역 원룸의 시세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여만원 선. 달팽이집은 10년 장기임대 계약으로 보증금을 확 낮췄다. 대신 공실에 대한 비용은 주택협동조합이 책임지기로 했다. 권지웅(26) 민달팽이 유니온 대표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조합에서 10년간 임대료를 보장하기 때문에 당장 임대료를 낮춰도 손해를 보지 않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확정된 입주자는 월 1만원의 조합비와 6구좌(30만원)를 출자한 만 19~39세 청년 가운데서 3차례 워크숍과 최종 면접을 거쳐 선발됐다.

주택협동조합은 집을 나눠쓰는 단순한 하우스메이트에서 벗어나 대안적 공동체를 지향한다. 김씨는 “하우스메이트들과 베란다에서 텃밭을 가꾸고 생일을 챙겨주는 등 일상을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혼자 살기엔 위험한데 공동체 생활은 안전망을 마련해주는 것 같아서 든든하다”고 말했다.

달팽이집은 앞으로 더 늘어날 예정이다. 5명의 1차 입주자가 내는 월세 중 2만5,000원은 다음 주택을 임대하기 위한 기금으로 적립된다. 임소라(30) 경영지원팀장은 “오는 11월 달팽이집 옆에 새로 지어지는 건물에 14명의 ‘민달팽이’들이 입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달팽이집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주방.
달팽이집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주방.
달팽이집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화장실
달팽이집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화장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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