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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던 출산 후 생활고... 20대 위기가정 ‘비극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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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던 출산 후 생활고... 20대 위기가정 ‘비극의 고리’

입력
2016.11.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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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놀랍도록 닮은 공통 패턴

어린시절 대부분 가정 불안 겪고

가족과도 사이 틀어져 의지 못 해

최악 상황 땐 자식 살해로 이어져

2. 사회적 개입 절실히 필요

20대 가정, 방식 몰라 불행 반복

50~60대 봉사자 멘토 연결하고

경제적 지원 방안 함께 모색해야

tvN 드라마 '호구의 사랑' 스틸컷. CJ E&M
tvN 드라마 '호구의 사랑' 스틸컷. CJ E&M

#고등학생 때 아이를 낳게 된 A(23)씨. 어린 시절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는 A씨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새 엄마가 들락날락했고 정서적으로 불안했다. 그리고 외로웠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살 많은 동네 오빠에게 의지하면서 덜컥, 애가 생겼다. 용기 내 가정을 꾸렸다.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3년 후 둘째가 태어났고 A씨는 두 아이의 육아를 오롯이 책임져야 했다. 자식에게만큼은 자신이 겪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쉽지 않았다.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두 아이와 씨름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자신의 삶이 젊음을 즐기는 또래 친구들과 비교될 때면 깊은 우울에 빠졌다. 육아를 도와주지 않는 남편이 미웠고, 아이들 앞에서 남편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살림살이는 궁핍했다. 남편이 공장에서 일해 벌어오는 돈은 월 150만원 안팎. 네 식구가 먹고 살기에는 빠듯했다.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정이나 시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20대 초반에 출산한 B(25)씨의 처지 역시 비슷하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생업에 뛰어든 엄마로부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은 적이 없었다. 아빠는 알코올중독이었다. 세 살 많은 남편은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났고, 교제 1년도 채 안 돼 계획에 없던 아이가 들어섰다. 친구들이 대학을 다니던 시기 B씨는 보증금 500만원짜리 반지하 방에서 신접 살림을 차렸다.

우울증이 있던 B씨는 출산 후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 게임에 빠져 아이들을 자주 방임했다. 양말이 없어 아이가 맨발로 어린이집에 간 적도 있다. 빨래 설거지 등 집안일은 쌓아두기 일쑤였다. B씨는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아이들은 술에 취해 붉어진 엄마의 얼굴과 고함 소리를 두려워했다. 남편은 이런 아내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헤어지고 싶지만 아이들 때문에 가정을 어렵사리 유지하고 있었다. B씨 가정도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주방 보조를 하는 남편이 버는 월 180만원으로 네 식구의 생계를 이어갔다. 양가와는 연락을 끊고 산 터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20대 부모가 꾸린 위기가정의 모습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불우한 가정 환경→준비 안 된 출산→경제적 곤궁 및 지지체계 부족→상황 악화’ 라는 공통된 틀을 갖추고 있다. 위기가정 부부가 자라온 환경은 불안정했고, 이로 인한 정서적 결핍은 의지할 수 있는 대상 찾기, 계획되지 않은 임신 및 출산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학교를 중단하거나 고등학교만 졸업한 상태에서 가정을 꾸리고자 일자리를 급하게 구하다 보니 경제적 기반도 탄탄하지 못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조차 원래부터 교류하지 않거나 결혼 반대 등으로 사이가 틀어져 지지대가 되어주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20대 위기가정의 상황이 악화화면 아동학대, 극단적으로는 자식살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터지지 않은 폭탄’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 생후 2개월 된 딸을 먹이지 않아 영양실조로 사망에 이르게 한 20대 부부의 사정은 앞서 밝힌 20대 위기가정의 유형과 유사했다. 이들 부부는 아내가 고3 때 양가 부모 동의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했고, 빚이 2,000만원에 달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생후 2개월 된 딸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방치해 숨지게 한 또 다른 20대 부부 역시 불우했던 유년시절, 어린 나이 원치 않은 임신, 생활고 등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에게 주변 지지체계를 만들어주고, 부모교육을 제공하는 등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물림 되는 비극을 멈추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을 ‘개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김숙기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원장은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발버둥치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대를 이은 불행이 반복되고 있다”며 “지역에서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해 보살피듯 20대 위기가정을 방문해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자식을 다 키우고 여유가 되면서 지역사회에서 봉사를 하고자 하는 50~60대를 이들 가정의 멘토로 연결해주는 식이다. 아이 키우는 법, 반찬 하는 법 등 친정 엄마처럼 가까이서 보살펴주는 정도의 관심만 보여도 정상화할 수 있는 가정이 많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은 “이들도 교육을 받으면 태도가 달라진다”며 “육아 전문가를 가정에 파견해 부모 교육을 하고 아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물질적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숙기 원장은 “최하층에 대한 지원만 있는데, 차상위계층에 머무는 20대 가정은 방치돼 있다”며 “열심히 일해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하는 가정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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