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기간 짧고 수요 예측도 어려워
백신을 만들고 공급하는 제약회사들은 늘 재고 문제를 고민한다. 한번 만들면 수년 간 약국에 진열해둬도 괜찮은 보통 의약품과 달리 백신은 유효기간이 대부분 2년 이내로 짧다. 유효기간이 지난 백신은 정해진 약효를 기대하지 못해 폐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백신 폐기가 간단치 않다. 성분 대부분이 독성을 줄이거나 일부만 떼어낸 병원체이기 때문에 폐기물 전문업체에 의뢰해 전량 소각해야 한다. 이때 적잖은 비용이 든다. 결국 백신의 경제성은 수요 예측에 크게 좌우된다.
치료약이면 환자 수를 집계하면 되지만, 백신은 얼마나 접종할 지를 예측해 생산량을 정해야 한다. 국가필수예방접종은 새로 태어난 신생아 수에 제조사별 백신의 시장점유율을 적용하면 얼추 수요가 짐작된다. 하지만 다른 백신들은 몇 명이 맞을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다른 나라나 과거 접종률을 근거로 추정할 뿐이다.
인플루엔자처럼 해마다 유행 양상이 달라지는 전염병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 예상보다 크게 유행하면 갑자기 백신이 바닥날 수도 있고, 큰 유행을 예상해 넉넉히 생산했다 재고가 쌓이면 난감해진다. 인플루엔자 백신 국내 수요량을 대부분 수입했던 과거와 달리 국내 제약사들도 상당량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최근엔 백신 과잉공급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국내 일부 제약사들이 사전에 생산 물량을 서로 조정하다 담합 의혹도 낳았다.
수요 예측이 쉽지 않다 보니 안정적 수익을 원하는 일부 제약사들은 비싸지만 접종 수요가 많은 ‘프리미엄 백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대상포진, 폐렴구균, 자궁경부암 등 국내에 유통 중인 프리미엄 백신은 대부분 다국적제약사 제품이다. 국내 한 제약사의 백신 전문가는 “공급 물량이 딸릴 때 다국적제약사들은 대개 본국이나 가격을 많이 쳐주는 나라에 백신을 우선 공급해왔다”며 “주요 백신 생산능력을 자체적으로 갖춰 백신 주권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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