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오간 덕담 속에는 뼈 있는 말들이 두드러졌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갈등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이견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항저우의 시후(西湖) 국빈관에서 열린 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모두발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항저우 방문을 환영한다며, 항저우와 일제 강점기 백범 김구 선생의 인연을 언급했다. 그는 “1930년대 일본 침략을 막기 위해 한국의 유명 지도자인 김구 선생께서 저장성에서 투쟁했고, 중국 국민들이 김구 선생을 위해 보호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어 “김구 선생님 아들인 김신 장군께서 1996년 항저우 저장성 옆에 있는 하이옌 도시를 방문했을 때 ‘음수사원(飮水思源ㆍ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한다는 뜻) 한중우의’라는 글자를 남겼다”고도 했다.
이는 한국과 중국이 일제에 함께 맞섰고 중국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사드 배치로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되고 있는 흐름에 대해 한중간의 역사적 뿌리를 언급하며 경계심을 드러낸 것이다. 시 주석은 2014년 7월 방한 중 가진 서울대 강연에서도 ‘임진왜란’을 언급하며 “양국은 어려울 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쟁터로 향했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하늘색 셔츠에 남색 블라우스를 입은 박 대통령은 “항저우에 와보니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화답하면서도 최근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이 “한중관계 발전에 도전 요인이 되고 있다”며 북핵으로 화제를 돌렸다. 한중 관계의 걸림돌은 사드 배치가 아니라 북핵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항의할 것이 아니라,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함의가 담긴 것이다..
박 대통령은 비공개로 진행된 회담에서 “나의 넓지 않은 어깨에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 밤잠을 자지 못하면서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박 대통령의 개인적 감정을 소개하면서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역설한 것이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회담은 오전 9시13분 시작해 46분간 진행됐다. 당초 예정된 30분보다 긴 시간이었다. 통상 정상회담은 순차통역으로 이뤄지는 데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동시통역으로 진행됐다고 우리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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