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시설 입소 거부하며 떠도는 노숙인들 어찌할꼬
알림

시설 입소 거부하며 떠도는 노숙인들 어찌할꼬

입력
2015.10.11 18:29
0 0

서울 지역 노숙인 3608명 중 414명은 여전히 거리에

알코올 중독 등 치료 시급하지만 보호ㆍ관리할 방법 뾰족이 없어

"상담 등 장기적 해결책 필요"

구세군이 운영하는 브릿지종합지원센터의 이효선(41ㆍ여) 사회복지사가 지난 6월 서울 지하철 안국역 앞에서 처음 본 송모(55)씨의 상태는 심각했다. 만취한 송씨의 양 다리는 살짝 건드려도 고름이 흐를 것 같았고, 이가 거의 없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구걸한 돈으로 술을 마시고 취해 행인들에게 행패를 부리곤 했다. 보호시설로 옮기려 설득했지만 송씨는 완강히 거부했다. 송씨는 인근 병원에서 간단히 다리의 염증 치료만 받고 다시 거리로 돌아갔다.

부산 출신인 송씨는 부모가 숨진 뒤 2003년 상경해 서울역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구걸로 하루하루를 연명했으나 고환비대증과 다리염증 등 신체 질환에 정신지체 증상까지 겹쳐 같은 노숙인들 사이에서도 기피 대상으로 전락해 서울역에서 쫓겨났다. 그는 충북 음성의 꽃동네 같은 보호시설에도 들어가 봤지만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다. 송씨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 시키기까지 이효선 사회복지사는 꼬박 두 달을 설득에 매달려야 했다.

매년 날씨가 쌀쌀해지면 노숙인 관리가 당국의 현안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송씨처럼 보호와 자활을 거부하는 ‘거리 노숙인’ 때문에 어려움이 반복되고 있다. 이들이 시설 입소를 원치 않으면 강제로 입원시키거나 시설에 수용할 수단이 없는 탓이다. 그로 인해 노숙인들은 사회로부터 더욱 고립되고, 신체적ㆍ정신적 무력감도 커지는 현실이다.

11일 서울시에 따르면 8월 현재 서울 지역 노숙인 3,608명 중 자활ㆍ재활ㆍ요양 시설 등에서 관리를 받는 노숙인은 3,194명이다. 414명은 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해 여전히 거리를 떠돌고 있다. 특히 거리 노숙인과 쪽방촌에 임시 거주하는 노숙인 중 ‘위기 노숙인’으로 분류된 사람만 690명에 달하는데 전부 알코올 중독(295명)이나 정신질환(395명)에 시달리고 있어 치료가 시급하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2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의 한 공원에서 어르신과 노숙인들이 자원봉사 단체에서 제공하는 식사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뉴시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2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의 한 공원에서 어르신과 노숙인들이 자원봉사 단체에서 제공하는 식사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뉴시스

10년 동안 거리 생활을 해온 여성 노숙인 이모(36)씨도 마찬가지다. 정신병력이 있는 이씨는 상담을 받고 여성 노숙인시설에 입소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들락날락했다. 지난 7월 다시 상담사의 눈에 띄었을 때는 임신한 여성처럼 배가 불러 있었다. 병원에서는 이씨가 난소종양이 있다는 판정을 내렸다. 경찰의 협조로 가족을 찾아 함께 설득한 끝에 이씨는 지난달에서야 서울의료원에 입원해 각종 질병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와 보호가 동시에 필요한 거리 노숙인을 제도권 복지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현행 정신보건법에서는 본인 동의 없이도 의료진과 경찰이 동의하면 72시간 내에 강제 응급입원이 가능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때문에 이들을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 복귀시키려면 시설을 기피하는 원인을 면밀히 파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관계자는 “장기 노숙에서 오는 대인관계의 두려움이 점점 보호의 울타리를 거부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며 “인간관계에서 겪은 갈등을 꾸준한 상담을 통해 해소해 줘야 자활 의지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와 서울경찰청, 서울시노숙인시설협회 등 관계 당국도 방치되고 있는 거리 노숙인의 심각성을 감안해 지난 7월 양해각서(MOU)를 맺고 협의체를 구성했다. 경찰 관계자는 “겨울이 오기 전에 노숙인 규모를 줄이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사회 복귀가 가능한 종합적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