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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동화작가

등록 : 2017.10.21 04:00

[나를 키운 8할은] 동화작가 황선미 “결핍이 창작 원천 됐다”

동화작가 황선미의 '그리움'

등록 : 2017.10.21 04:00

마당 한쪽에 꽃 피고 감나무

유년의 집 뿌리 뽑힌 순간부터

다시 갖지 못할 그리움 시달려

동정 받기 싫고 지기도 싫어서

애쓰는 동안 쉬지 않고 창작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 ‘나쁜 어린이표’ 등의 작가 황선미는 1995년 ‘구슬아, 구슬아’로 데뷔한 이래 20년 넘게 창작 동화를 써왔다. 황선미 제공

명절에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는 오랜만에 건네는 인사 같은 거였다. 친척 언니의 말은 종결어미가 생략된 양 매가리가 없었다.

“문 열고 나갈 때마다 흙을 밟고 싶어.”

나는 무심코 왜 시골집에 살고 싶은지 물었던 것 같다. 다 늙어서 시골집 타령을 해댄다고 일축하는 남편 앞에서 입을 다무는 그녀가 좀 안쓰러워서. 그 이야기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얼른 내면을 감추었다. 마치 조심스레 내민 촉수가 다칠세라 몸 사리듯. 참 이상하게도 나는 순간 그녀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허공에 뜬 집. 허공에 뜬 삶.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구나. 적당히 덮고 웬만하면 부딪히지 않으면서. 왜 갑자기 그 말이 떠올랐을까.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쓸쓸한 감정이 관성적 글쓰기에 지친 나를 건드렸다.

데뷔 후 지금까지 나는 쉬지 않고 창작에 매달렸다. 소재가 마르지 않았으니 좋게 말하면 지치지 않는 현업작가라 할 수 있고, 자조적 고백을 하자면 브레이크가 마비된 상황이라 하겠다. 요즘 나는 자꾸만 뭔가를 잃은 기분이었다. 기쁨에 대해서도 슬픔에 대해서도 하다못해 나 자신에 대해서도 확신이 부족했다.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건만 절실하지 않았고 내가 좌절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 탓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문 열고 나갈 때마다 흙을 밟고 싶다는 소망보다 내 작업은 얼마나 더 간절한가.

그녀는 아파 보이고 지쳐 있었다. 참 예쁜 여자였으나 환갑이 되도록 재봉틀 앞을 벗어나지 못했고 내면을 드러내지도 작은 욕망을 실현하기도 어려운 채 살아왔다. 금전적인 문제보다 그녀를 힘들게 하는 건 대개 지인이거나 관계의 어려움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간절한 내면의 소리가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부모와 살던 때가 그리운지도 모른다. 문 열면 마당이 있는 집. 기댈 어른이 아직 있는 집. 나에게도 그런 그리움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작가로서의 모든 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감나무가 튼실하게 서 있는 뜰. 마당 한쪽에서 해마다 꽃이 피어나던 유년의 집. 그때 나의 부모는 건강했고 나는 내 세계에 어떤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완벽한 세상은 지속되지 못했다. 풍요로운 고향에서 뿌리 뽑히던 순간부터 나는 결핍에 시달렸고 고향 이미지를 환상적으로 확장할 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시는 갖지 못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분명한 소속감과 내가 누구인지 의심하지 않게 해준 어른들의 집. 그것이 사라졌으니 돌아갈 수 없고 그때의 결핍은 도무지 나이를 먹어도 채워질 줄을 모른다. 단편적인 고향의 기억은 내 작품 속에서 원체험으로 활용되곤 하는데 이는 그리움의 대상이면서 결핍을 증명하는 근거일 수밖에 없었다.

각혈하는 유년기 내내 언젠가는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꿈꾸었고, 자식들을 더는 다정하게 건사하지 못하는 부모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내 것이라고는 없는 삶에서 견디고자 많은 것을 상상해냈다. 가출을 감행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겁쟁이였으므로 내가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남는 방법은 가상의 세계를 구축하고 숨어들 수 있는 창작이 유일했다. 작가라는 말보다 절실했던 이야기 세계.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창작의 원천인 셈이었다.

동정 받기 싫고 지기도 싫어서 애쓰는 동안 나는 작가가 되었고 작품 수와 더불어 경계심과 고집도 늘었다. 견고한 나를 무너뜨린 건 아버지의 부드러운 한 마디였다. 칭찬이라기에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던 딱 한마디.

“그년 참......”

일간지에 실린 딸의 첫 기사에 대한 반응. 왜 그토록 노력하고 참아냈는지 나는 그제야 알았다. 칭찬받고 싶었구나. 부모로부터.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아이가 자존감을 갖는 데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소속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정. 그게 부모로부터 채워지지 못했을 때는 내면이 텅 비고 그걸 채우고자 밖으로 돌 수밖에 없다니 나 역시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고 할 수밖에. 내 경우 ‘밖’이 다른 세계 구축의 방식이었고 이게 사회적인 역할로도 이어졌으니 다행이었을 뿐이다. 썩 다정하지 않았어도 칭찬 받은 적도 있고. 너무 일찍 박탈감을 경험한 아이들은 행복한 어른이 되기 어렵다. 결핍을 채우고자 부단히 노력하지만 비어버린 내면을 채우기란 쉽지 않으니 애쓰는 과정이 마치 천국에서 쫓겨난 천사들처럼 애처롭다.

거두어들인 이야기를 그녀가 다시 꺼낼까. 그러면 나도 무엇을 빠뜨리며 왔는지 알 것도 같은데. 나의 결핍이 채워지기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어떤 간절함으로 빈 곳을 메우고자 애써야 할지 생각이 많아진다.

황선미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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