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여대 미대 교수의 학생 성추행
세상에 알린 시간강사 첫 심경 토로
“피해 학생이 꽃뱀이라고 소문 돌고
내가 교수직 노렸다며 손가락질도”
결국 학교에선 재계약 언급도 안 해
“모교 후배들 가르치겠단 일념으로
8년간 힘든 유학생활도 버텼는데”
지방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김모씨는 1년 전만 해도 덕성여대 미대 시간강사였다. 그가 화구를 손에서 놓은 것은 학과 교수의 여학생 성추행 사실을 신고한 ‘내부 고발자’로 몰렸기 때문이다. 조직의 부정이나 비리를 알린 내부 고발자가 오히려 따돌림을 당하거나 퇴출 압박을 받는 ‘공식’은 김씨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교 교수가 되는 꿈마저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그가 4일 사건 발생 1년여 만에 본보에 처음으로 심경을 토로했다.
내부 고발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미술학도였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20대 후반 영국 유학도 다녀왔다.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하고 생활비가 부족해 곰팡이가 생긴 빵을 먹기도 했다”는 그는 “교수가 되려는 일념으로 8년 유학 생활을 버텼다”고 말했다.
2014년 7월 모교인 덕성여대 강사로 임용된 김씨는 후배 학생으로부터 성추행 사실을 전해 들었다. 상대는 미술계의 촉망 받는 중견 작가이자 미대에서도 실력자로 통하는 A교수였다. 임용된 지 반 년도 안 됐지만, 김씨는 같은 해 12월 24일 교내 성폭력대책위원회에 A교수를 신고했다.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학교는 일주일 만에 A교수를 직위 해제하고 총장 직무대행의 명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김씨가 학교 재학생과 졸업생 수십명으로부터 받은 자필 탄원서와 진술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씨는 “미술계에서 A교수의 영향력이 크다며 고발을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내부 고발 이후의 삶은 예상보다 험난했다. 지난해 초 학교는 강사 계약기간이 끝난 김씨에게 재계약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일을 벌인 시간강사를 누가 쓰려고 하겠냐”면서 “나도 몸과 마음이 지쳐 학교에 남을 여력이 없었다”고 기억을 반추했다. 고향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김씨는 사건이 마무리된 후 해외 이민을 갈 생각이다. 이에 대해 덕성여대 측은 “해당 강사에게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았다”며 “강사가 맡고 있던 과목을 신임 교수가 가르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학교 징계위원회, 경찰과 검찰 조사, 법정 증언에 불려 다녔다. 심지어 경찰도 ‘왜 피해자도 아닌데 이런 일을 하느냐’고 말했다. “처음 피해 학생으로부터 성추행 사실을 듣고 너무 화가 났고, 정신 없이 울었다”는 김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왜 나서서 고생하냐는 질문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심정을 전했다.
가장 괴로운 건 사람들의 오해와 손가락질이었다. 학내에선 김씨가 교수직을 노리고 A교수를 음해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피해 학생이 ‘돈을 노린 꽃뱀’이라는 황당한 소문도 돌았다. 그는 “교수직을 노렸다면 피해 학생을 모른 척하고 A교수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모교에서 후배를 가르치는 꿈은 포기해야 했지만, 내가 한 일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A교수는 “볼에 입을 맞추긴 했지만 입술에 한 적은 없다”며 혐의를 부인해오다가 지난달 21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1심 결심 공판에서 돌연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대신 A교수 측은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한 화가였던 만큼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벌금형을 선고해 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형의 종료시점부터 최소 2년간 임용 자격을 박탈하는 덕성여대 교원인사 규정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피해 학생 측과 김씨는 A교수가 학교로 복귀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김씨가 어렵게 인터뷰에 나선 이유다. 그는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는 사람이 학교로 돌아가 피해자가 느는 일만은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 A교수에 대한 선고 공판은 이달 28일 열린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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