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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빠랑 살고 싶어요” 다문화가정 준이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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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빠랑 살고 싶어요” 다문화가정 준이의 소망

입력
2017.0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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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인천 율목동 이주민사회통합지원센터에 이준이(8)양과 어머니 부추우제이(50)씨, 아버지 류하이보(44)씨가 모여 앉았다. 정반석 기자
21일 인천 율목동 이주민사회통합지원센터에 이준이(8)양과 어머니 부추우제이(50)씨, 아버지 류하이보(44)씨가 모여 앉았다. 정반석 기자

한국인 아빠와 이혼한 엄마

2년전부터 갑상선ㆍ자궁암 투병

중국인 새아빠 도움 절실한데

정부선 거주비자 안 내줘

법무부ㆍ영사관에 편지로 호소

“엄마가 많이 아파요. 옆에 아빠가 있어야 하는데, 아빠에게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아빠가 돈을 벌지 않으면 엄마는 죽습니다. 제발 엄마를 살려주세요.“

20일 오후 인천 율목동 이주민사회통합지원센터(이주민지원센터). 이제 여덟 살을 갓 넘긴 이준이양이 사무실 한 쪽에 마련된 책상 앞에 앉아 B4 크기의 노트를 폈다. “법무장관님, 심양 영사관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준이입니다.” 이 양은 삐뚤삐뚤하지만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편지 노트는 금세 이 양의 사연과 소망으로 가득 찼다.

이 양은 중국인 어머니 부추우제이(付秋杰·50)씨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2009년 태어났다. 세 살 때 부모가 이혼을 했고, 다섯 살 되는 해부터 중국에서 온 새 아버지 류하이보(劉海波·44)씨와 함께 자랐다.

가족의 행복은 2015년 어머니 부씨가 암에 걸리면서 산산조각 났다. 2년간 자궁암 및 갑상선암 치료를 받았지만, 왼쪽 눈과 유방까지 원인 모를 혹이 생기면서 병세는 악화하기만 했다.

지난해 5월에는 비자 문제로 잠시 중국으로 돌아갔던 아버지 류씨가 한국으로 돌아올 길이 막혀 버렸다. 한국 거주비자(F-2)가 불허된 것. 설상가상이었다. 관광비자를 받아 가족 곁을 지키고 있지만, 비자 기간이 끝나면서 수술비와 당장의 생활비를 감당해야 할 가장이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앞서 부씨는 수술 동의서를 작성할 가족이 없어 지난해 6월 갑상선 암 수술을 다섯 달이나 미뤄야 한 적도 있었다.

이 양은 “제발 새 아빠가 엄마 병 치료도 하고, 같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지금 학교도 가기 싫은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혼을 내신다”면서도 “엄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시면 저는 혼자 어떻게 살아가나요”라고 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아빠가 꼭 돌아오게 해 주세요. 그래야 엄마가 수술받고 세 식구가 잘 살 수 있으니까요.” 이 양의 편지는 이주민지원센터를 통해 법무부와 선양 주재 한국 영사관에 전달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양의 소원’은 쉽게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류씨의 거주비자 신청이 17일 거절됐다.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는 “법무부 고시에 의하면 중국에서 거주비자 신청이 거절된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아 신청권이 없다”며 중국으로 돌아갈 것을 명했다. 이 뿐만 아니라 거주비자를 받을 수 있는 자격 요건도 연소득 2,200만원 이상(법무부 고시)이라 이들의 소득수준을 볼 때 거의 불가능하다. 영주권자인 부씨의 소득은 정부지원금 월 70만원이 전부다. 목수일을 하는 류씨 소득도 변변치가 않다.

이주민지원센터장인 서광석 인하대 이민다문화정책학 교수는 “이 양은 지난 10월에도 법무부 등에 편지를 보냈지만 아무 답이 없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 등은 이 양의 처지가 법무부고시에서 인정되는 ‘급박한 사정’에 해당한다며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를 대상으로 행정소송에 나설 계획이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지난해 10월 25일 이준이(8)양이 중국 심양 영사관에 부친 편지. 이양은 한국에서 암투병 중인 어머니 부추우제이(50)씨의 치료를 돕기 위해 아버지 류하이보(44)씨의 비자를 허가해달라고 간청했다. 이준이 제공
지난해 10월 25일 이준이(8)양이 중국 심양 영사관에 부친 편지. 이양은 한국에서 암투병 중인 어머니 부추우제이(50)씨의 치료를 돕기 위해 아버지 류하이보(44)씨의 비자를 허가해달라고 간청했다. 이준이 제공
20일 이준이(8)양이 법무부장관에게 보내기 위해 쓴 편지. 이양은 한국에서 암투병 중인 어머니 부추우제이(50)씨의 치료를 돕기 위해 아버지 류하이보(44)씨의 체류를 허가해달라고 간청했다. 이준이 제공
20일 이준이(8)양이 법무부장관에게 보내기 위해 쓴 편지. 이양은 한국에서 암투병 중인 어머니 부추우제이(50)씨의 치료를 돕기 위해 아버지 류하이보(44)씨의 체류를 허가해달라고 간청했다. 이준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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