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코쿠(四国) 가가와(香川)현 앞 바다에 있는 나오시마(直島)는 불과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쓰레기 섬’이었다. 1917년 미쓰비시(三菱)사가 나오시마에 중공업단지를 만들었고 이후 70여 년 동안 나오시마는 각종 산업폐기물을 받아냈다.
버려진 땅 나오시마가 ‘예술섬’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일본의 교육기업 베네세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덕분이다. 기업과 주민간 협동 공공예술프로젝트를 통해 섬 전체가 건축물, 조각, 모던예술 미술관 등 에코뮤지엄(Ecomuseum: Eco+Museum)으로 조성된 것이다. 지금의 나오시마는 연간 3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생명의 섬으로 변모했다.
죽어 있던 나오시마가 현대 예술의 성지로 부활한 것처럼 경기도가 경기만 일대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시작했다. 경기만의 ‘창조적 지역재생’을 도모하기 위해 화성시와 시흥시, 안산시 등과 지난 7월 ‘경기만 에코뮤지엄 조성협약’을 맺은 것이다. ‘경기만 에코뮤지엄’은 주민이 지역의 ‘로컬 큐레이터’로 참여, 지역만의 독특한 자연과 문화ㆍ역사 자원 100곳을 수집ㆍ발굴해 선보이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 될 것이라고 경기도는 설명했다.
▦역사ㆍ생태자원 풍부한 경기만(京畿灣)
경기만은 경기도와 인천시의 서쪽 한강 하구를 중심으로 북쪽의 장산곶과 남쪽의 태안반도 사이에 있는 너비 100㎞, 해안선 528㎞의 반원형 만(灣)이다.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 200여 개가 떠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강화도와 옹진군을 포함한 인천광역시가 경기만의 80%를, 옹진반도와 경기도, 충청남도가 20%를 차지하고 있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올해 경기만 일대를 조사해 보존해야 할 지역자원 2,975개를 찾아냈다. 역사자원이 1,884개(63.3%)로 가장 많고 문화자원 752개, 자연자원 339개 순이다. 지역별로는 안산시가 1,315개(44.2%), 부천시 462개, 화성시 442개, 시흥시 438개, 평택시 229개, 김포시 88개 등이다.
경기도는 경기만에 흩어져 있는 이런 역사문화유산, 해양생태자원, 지역생활사 등을 보존ㆍ재생하고 하나의 브랜드로 통합해 예술로 승화하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업 총괄은 국내 최대 예술가 레지던시(Art Residency)인 경기문화재단의 경기창작센터에 맡겼다.
▦생태ㆍ예술의 거점 안산
경기창작센터가 경기만 에코뮤지엄 조성에 맞춰 안산에서 추진 중인 대표 프로젝트는 누에섬 생태ㆍ예술체험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이다. 갯벌에 국한되던 해양 체험 소재를 탈피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누에섬 ‘어린이 예술섬’ 조성에 대한 리서치를 수행 중이다. 참여하고 있는 작가는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한 양쿠라, 이윤기, 최정수, 홍남기 등 5명이다.
센터는 또 단원구 대부도동 옛 대부면사무소를 안산권역 에코뮤지엄의 거점센터로 만들기로 했다. 대부도 상동에코뮤지엄을 조성해 상동에 자리하고 있는 근대문화유산도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센터가 자리하고 있는 대부도 선감동 옛 선감학원 터에도 12월까지 컨테이너 박스를 활용, 야외박물관을 조성한다. 첫 기획(봄날예술인협동조합ㆍ자우녕 작가)으로는 선감학원 생존자들의 기억을 담은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부랑아 수용소’로 알려진 선감학원은 1942년에 세워져 1982년까지 운영됐다. 원생 상당수가 부랑아가 아님에도 강제로 끌려와 폭행과 굶주림, 각종 질병 등에 시달려야 했다. 경기창작센터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지난 2013년 선감역사관을 조성했다.
▦시흥 바라지 에코뮤지엄의 탄생
시흥지역의 에코뮤지엄 대상지는 시흥갯골과 호조벌이다. 경기창작센터는 시흥시와 손잡고 지난 5일 시흥갯골 에코뮤지엄을 개장해 ▦소금창고 아카이브전 ▦컬러필드(color field) ▦갈대둥지 독서실 등을 선보였다. 시흥갯골과 염전 등에 작품을 설치, 전시해 시흥갯골의 아름다움과 역사를 예술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시흥시 에코뮤지엄 자산인 호조벌에는 천국의 놀이터라는 제목의 놀이터가 들어섰다.
▦평화의 땅, 화성
화성지역에서는 매향리 마을과 제부도 등이 에코뮤지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경기창작센터는 입주작가 이기일을 파견해 과거 미공군 사격장으로 사용된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옛 매향교회 건물을 스튜디오로 보수 중이다. 이곳은 평화를 주제로 한 예술창작 공간이자 지역 커뮤니티의 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상업시설 난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부도는 연안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쉼터로 탈바꿈된다. 센터는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게 간판 등이 어지럽게 설치된 제부도 음식문화거리는 그대로 두되 곳곳에 문화공간을 조성하고 지역 정체성을 담은 안내표식 등을 다시 설치하기로 했다. 로컬큐레이터로 최두수 작가가 참여해 기획 중이다.
최병갑 경기도 문화정책과장은 “시흥과 안산, 화성 등지에 퍼진 자연과 예술, 이야기를 엮어 관광자원 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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