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1등만을 기억합니다.” 90년대 중반 삼성은 이런 문구로 시작하는 유명한 광고 시리즈를 내보냈다. 이건희 회장이 이른바 신경영을 들고 나온 무렵이었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삼성의 1등 제일주의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떠받쳐온 금과옥조이기도 했다. 1등 제일주의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분야는 올림픽이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이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모습이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다.
이번 평창 겨울올림픽을 보면서 참 좋았던 점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선수들도 국민들도 너무 금메달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올림픽과 경기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었고 메달 색깔이 아니라 과정과 노력을 평가하는 풍토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번 평창 올림픽은 확실히 2등도 기억하는 올림픽이었다. 썰매 종목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따며 스켈레톤의 새로운 황제로 등극한 윤성빈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남자 봅슬레이 4인승 선수들과 여자 컬링 대표팀,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의 이상호는 대한민국 스포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위대한 2등들이다. 또한, 메달은 하나도 없지만 올림픽에 네 번이나 출전해 최선을 다했던 노선영을 기억한다.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크로스컨트리의 이채원을 기억한다. 23년째 국가대표로 창공을 갈랐던 스키점프 선수들을 기억한다. 낯선 나라에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열심히 뛰었던 귀화선수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5전 전패를 기록한 아이스하키 남북한 단일팀을 기억한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이제 1등 제일주의를 좀 벗어나면 안 될까? 20여 년 전 세계일류를 표방하며 역사가 기억하는 1등이 되겠다던 삼성은 지금 정경유착의 추악한 모습을 하나씩 드러내고 있다. 공정한 심판 역할을 해야 할 법원은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재판에서 삼성의 엄청난 반칙을 슬그머니 눈감아 주었다. 재벌 하나 세계 1등 만들자고 정부 조직과 국민 경제, 심지어 사법체계마저 작동불능의 상태로 망가뜨리는 짓은 유망주 한 명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만들기 위해 대한민국 스포츠 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과도 같다. 지금 우리는 그런 금메달리스트도, 그런 1등 재벌도 원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금메달 한두 개에 연연할 정도는 훨씬 넘어섰다. 재벌이 세계를 제패한다고 해서 그 이득이 국민경제에 골고루 뿌려지는 것도 아니다. ‘무조건 1등’에서 ‘얼마나 정당하게’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스포츠만큼이나 정직한 분야가 과학이다. 과학은 그 결과보다 과정 자체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이어야만 한다. 1등 제일주의가 과학을 지배했을 때 어떤 재앙이 초래되는지 우리는 이미 황우석 사태를 겪으며 큰 수업료를 치렀다. 될성부른 1등 유망주에게만 국가적인 지원을 집중해서 노벨상을 따겠다는 발상은 그래서 발상 자체가 과학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 그런다고 해서 노벨상이 나올 리도 만무하지만, 그렇게 나온 노벨상이 지속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초과학이 자생력을 가지고 뿌리를 내리지도 못한다. 더군다나 21세기의 과학은 특출한 천재 한두 명이 많은 문제를 해결했던 20세기 초반과는 아주 다르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디랙, 보어 같은 20세기의 천재들은 20대의 놀라운 업적으로 30대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20세기 말부터는 이런 일이 굉장히 드물다. 지난 100년 동안 인류가 쌓아 온 지성의 두께가 두꺼워졌고 그만큼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알아야 할 내용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또한 소규모의 장비와 인원으로 비교적 쉽게 알아낼 수 있는 현상들은 이미 대충 다 밝혀졌다. 분야마다 다를 수는 있으나, 새로운 프런티어를 열기 위해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사람이 투입되는 이른바 빅 사이언스의 경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지난 2012년 힉스 입자를 발견한 입자가속기 연구진에 참여한 과학자는 모두 7,000명 가까이 된다. 작년 여름 중성자별의 병합과정을 중력파와 전자기파로 관측하는 데에 참여한 과학자는 모두 4,000여 명으로, 전 세계 천문학자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두 명 잘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제는 우리도 유아독존식 1등 제일주의가 아니라 통합과 협력의 상생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오픈 소스와 집단지성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초연결과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수평 네트워크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요소이기도 하다. 이상화와 고다이라의 스토리는 그래서 남북한 단일팀과 함께 평창 올림픽이 남긴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2등이 어떻게 가능한지, 아니 그렇게 1, 2등을 따져 묻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절절이 느낄 수 있었다. 평창 올림픽이 4차 산업혁명시대의 첫 올림픽으로 기억된다면, 그것은 평창의 밤하늘을 수놓은 1,200여 대의 드론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아둔함을 일깨워 새로운 시대정신을 보여준 진정한 스포츠맨들 덕분이리라.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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