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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랍 초기 해적 식량 떨어져 망망대해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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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랍 초기 해적 식량 떨어져 망망대해 떠돌았다”

입력
2018.05.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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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피랍 선원의 급박했던 뒷이야기

내륙 머물렀던 곳은 ‘움막집 소 외양간’

문 대통령 “나이지리아 대사관 석방 위해 수고”

2011년 청해부대가 아라비아해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우리 화물선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출하고 해적을 모두 제압했다. 사진은 진압작전을 위해 고속단정과 링스헬기가 여명에 맞춰 삼호주얼리호에 다가가고 있다. 해군 제공
2011년 청해부대가 아라비아해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우리 화물선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출하고 해적을 모두 제압했다. 사진은 진압작전을 위해 고속단정과 링스헬기가 여명에 맞춰 삼호주얼리호에 다가가고 있다. 해군 제공

“이러다가 바다에서 죽겠구나.”

아프리카 가나 인근 해역에서 해적에 납치됐다가 32일 만에 풀려난 한국인 선원 3명이 피랍 초기 이틀 동안 식량ㆍ식수도 없이 바다 위를 떠돌았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정부도 납치된 지 10일이 지나서야 한국인 선원의 생사 여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4일 “(해적들과) 원해(먼 바다)상에서 5일간 헤맸는데, 3일차 되는 날 식량과 식수가 다 떨어지고 선원들로서는 이러다 바다에서 죽겠구나 했다”며 “자기들(해적)끼리도 항구 못 찾는다고 치고 박고 싸웠다”고 피랍됐던 선원들의 증언을 전했다. 또 주간에는 항공기나 헬기가 보트를 보지 못하게 해적들이 배 전체를 우의로 덮었는데, 한국인 선원들은 보트 내부에서 상당히 뜨거웠다고 기억했다.

선원들은 식량과 식수가 떨어지고 엔진마저 고장이 나 해상을 떠돌 수밖에 없었지만, 천운으로 부근을 지나가던 가나의 카누(목선)를 만나 식량과 식수를 공급받았고, 엔진도 다시 켜져 간신히 5일째 되는 날 내륙에 접안 했다고 한다.

이들이 바다를 떠돌게 된 사연은 이렇다. 지난 3월 26일 나이지리아 해적에 피랍된 마린 711호 한국인 선원 3명은 다음날 7m 정도 크기의 작은 스피드보트로 옮겨졌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스피드보트에는 한국인 선원 3명, 그리스 국적 선원 1명, 가나 국적 선원 1명 등 5명의 인질과 9명의 해적 등 14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일반 선박보다 2배 빠르고 위성 위치 추적이 불가능한 스피드보트를 타고 해상으로 사라져 5일을 떠돌았다. 한국과 나이지리아 정부, 선사의 추적이 끊긴 시기도 이때다.

이들이 목적지 없이 바다를 떠돌았던 만큼, 정부도 초기에는 선원들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해적들이) 5일 동안 대양에서 표류하다 보니 (우리 측과) 접촉이 상당히 늦었다”며 “약 10일쯤 넘어서 최초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나이지리아 정부와 부족 등의 여러 첩보로 한국인 선원의 대략적인 위치는 가늠할 수 있었지만, 정확한 장소는 알기 힘들었다고 당국자는 전했다.

간신히 육지에 도착해서도 상황은 나이지지 않았다. 한국인 선원들은 자신들이 머물렀던 곳을 “움막집의 소외양간 정도”로 표현했다고 한다. 다만 당국자는 “(선원들이) 하도 원해에서 고생하다 보니까 소외양간도 호텔 같더라”라는 선원의 말을 전했다. 해적들이 계란, 분유, 통조림, 쌀 등 충분하진 않지만 기본적인 물품은 제공했고, 선원들은 초기에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였다고 했다.

함께 납치된 가나 국적 선원은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당국자는 “4월 10일, 납치되고 2주 정도 됐을 때 가나 선원이 도주를 하다가 3일 만에 잡혀 들어왔다”고 했다. 부근 지역에 수로가 수백 개가 넘기 때문에 길을 알지 못해 헤매다가 해적에 다시 잡힌 것이다. 당국자는 “우리 선원들도 도주할까 생각했고, 경계 서는 해적들을 어떻게 하고 나갈 방법을 생각했지만 빠져나가도 길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실행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나이지리아 해적들은 전문가 같았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육지로 왔을 때 제일 먼저 지급했던 게 말라리아 예방약과 간지러울 때 바르는 연고, 두통약을 약국에서 주듯 약봉지에 담아서 지급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선박에 침입해 생선이나 휘발유를 탈취하는 기존 유형의 해적이 아니라, 총을 들고 빠른 시간에 인질을 납치해 협상을 하는 전문적인 인질범으로 정부는 분석했다. 문무대왕함이 출발했다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며 해적을 압박한 정부의 판단이 결과적으로 주효했다.

다만 한국인 선원의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을 하면서까지 문무대왕함의 존재를 해적들에게 알렸어야 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국자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와중에 “(나이지리아 정부) 규정은 군사작전을 하면 납치범들이 인질을 그야말로 위해하고, 또는 장소를 이탈하기 때문에 그쪽 경찰과 군 기관에서는 군사작전을 하지 말라고 권유한다”고 했다.

당국자는 “이번 국민 석방은 외교부, 관계기관, 재외공관 등이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돼 가능했다”며 “협조 체제가 상당히 잘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사 신임장 수여식에서 이인태 주나이지리아 대사에게 “가나에서 피랍된 선원들의 석방을 위해 수고가 많았다”며 나이지리아 대사관 직원들의 노고를 높이 평가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밝혔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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