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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도서관 들어서니… 마을이 재잘재잘 공동체도 살아나

입력
2015.05.3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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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공공도서관 평균 장서량 10%에도 못 미치는 규모지만

아이들 독서 ·인성 ·생태 교육에 시민들 복합문화공간 기능까지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빠듯한 예산 열악한 상황에도

다양한 강연 콘텐츠 지원으로 무너진 마을공동체 복원에 일조

지난달 경기 안산시 단원구 초지 작은 도서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동화책 '지각대장 존'을 주제로 한 인형극에 푹 빠져있다.
지난달 경기 안산시 단원구 초지 작은 도서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동화책 '지각대장 존'을 주제로 한 인형극에 푹 빠져있다.

“지각대장 빵꾸는 또 늦어서 반성문을 쓰게 됐지 뭐에요. 여러분 반성문이 뭔지 알아요?”

“네! 잘못해서 엉덩이로 이름 쓰는 거잖아요.(웃음)”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주택가에 자리한 초지작은도서관의 종합자료실인 글마루가 까르르 터진 아이들의 웃음보로 가득 찼다. 걸어서 10~20분 거리에 사는 아이들은 작은도서관에서 열린 오토마타(automataㆍ움직이는 인형) 인형극을 즐기기 위해 모인 이웃 지간이다.

오가며 목례라도 나누면 다행일 정도로 데면데면했던 이들은 요즘 ▦인형극 등 문화프로그램 ▦책 읽어주는 마녀 봉사단 ▦어린이 토론회 ▦우크렐레 연주 모임 등으로 똘똘 뭉치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제 집 드나들 듯 도서관을 오가며 하굣길 발걸음은 쪼르르 도서관으로 향한다. 이런 변화는 장서량이 전국 공공도서관 평균(약 9만5,000권)의 10%에도 못 미치는 이 작은 도서관이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됐다.

작은도서관들이 전국 마을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단순히 책을 대출해 보고 돌려주는 기능을 넘어 아이들의 독서교육, 인성교육, 생태교육의 장이자 시민들의 복합문화공간 역할을 하며 지역사회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작은도서관은 열람석 6석, 보유장서 1,000권 이상인 도서관을 말한다. 2009년 도서관법 개정과 함께 공공도서관의 범주에 포함됐다.

도서관에는 좌식 마루가 마련돼 신발을 벗고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다.
도서관에는 좌식 마루가 마련돼 신발을 벗고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다.

초지작은도서관은 주민센터가 이사 간 뒤 빈 건물에 마을문고를 만들어달라는 주민들의 건의로 2012년 11월 문을 열었다. 지역 도서관 설립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의 ‘고맙습니다 작은도서관’사업에 안산시가 문을 두드렸고, 후원사 KB국민은행이 1억원의 예산을 지원하며 법인의 리모델링, 컨설팅, 책 기증, 운영 매뉴얼 및 각종 문화프로그램 콘텐츠 및 경비 지원이 순조롭게 이뤄졌다. 시민단체인 안산YMCA가 위탁 운영한다.

자녀들과 함께 이 도서관에서 옥상 텃밭을 가꾸는 생태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고경애(43)씨는 “아이들과 걸어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으면 해서 시청에 마을도서관 설치를 건의해왔다”며 “개관 이후 꾸준히 아이와 여러 동아리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또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아이들끼리 시간을 보내야 할 때가 많은데, 도서관에서 놀고 있다가 만나자고 하면 아이가 방과 후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책을 접한다”며 “사서선생님이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고 친하게 지내다 보니, 학교에서 만든 공작 작품 자랑하겠다며 꼭 하굣길에 도서관으로 향한다”고 뿌듯해했다.

2층 테라스 겸 옥상에서는 텃밭 가꾸기 교육 및 실습이 이뤄진다.
2층 테라스 겸 옥상에서는 텃밭 가꾸기 교육 및 실습이 이뤄진다.

별다른 수익이 없어 빠듯한 시 예산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데도 이 도서관이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다양한 강연 콘텐츠와 강사 강연료 등을 꾸준히 지원하는 덕분이다. 임은아 초지작은도서관 관장은 “연립주택이 많아 소외되고 고립되기 쉬운 지역인데 도서관에서 작가와의 만남, 공예작품 만들기 등을 운영하면서 주민들의 접촉이 많아졌다”며 “무너진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 같은 작은도서관은 2010년 전국 3,349곳, 2011년 3,464곳, 2012년 3,951곳, 2013년 4,686곳으로 꾸준히 늘었고 지난해까지 약 5,000곳 이상이 들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형태는 공립, 사립, 종교시설, 새마을문고, 아파트작은도서관 등 다양하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재미있는 느티나무 온가족도서관’의 경우 최초 10가구가 조합원으로 참여해 150만원씩 출자금을 모아 도서관 시설을 마련했고, 조합원 중 1명이 관장을 맡아 운영한다. 인문학 강좌, 동네달력 만들기, 동네카페와 극장 등 다양한 시도로 ‘혼자만 잘 살지 않는 법’을 고민한다.

인천 부평구 산곡3동에 자리한 ‘청개구리 어린이도서관’은 다양한 지역 기관과 단체들이 십시일반으로 10년 넘게 운영 중이다. 은행에서 2층 공간을 무상임대해줬고, 비영리민간단체가 지역 현안사업의 일환으로 자금과 도서, 물품을 모았다. 경북 칠곡군 동명면의 유일한 도서관인 ‘고맙습니다 동명작은도서관’은 초등학교 2곳, 중학교 1곳, 고교 1곳이 있는데도 문화시설이 전무했던 농촌지역에 들어서 늘 아이들로 북적거린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의 변현주 사무국장은 “87년부터 시작한 작은도서관 설립 운동에 대한 정부 및 기관 관심이 최근 늘어나며 다양한 도서관들이 들어서 마을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있다”면서도 “운영 형태나 처한 여건이 워낙 다양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지원이 없는 민간 도서관의 경우 1,2명의 자원봉사자 및 관장의 헌신으로 겨우 형태를 유지하기 십상이라는 설명이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은 이들 도서관들을 지원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작은도서관 조성 운영 사례집’ 등을 발간 배포했다. 또 산간 및 농촌 지역일수록 인적, 물적 여건이 이미 갖춰진 학교에 작은도서관을 조성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 하에 1991년 전북 남원 원천학교마을도서관을 시작으로 전국에 249개 ‘학교마을도서관’을 조성했다.

변 국장은 “도서관 운영 컨설팅 노력도 많이 하지만 학교 개방에 대한 교육당국 등의 관심이 미흡해 애써 설치한 도서관이 방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책 읽는 문화 보급과 마을 공동체 복원을 위한 각계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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