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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86)암이란 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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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86)암이란 놈은

입력
2002.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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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건강 체질이었다.지금까지 병원이라는 곳은 어쩌다 한두 번 가는 곳이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축구 한 게임을 거뜬히 뛰었던 내가, 5분을 한 자리에 있지 못하고 돌아다녀야 했던 내가 이렇게 된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솔직히 누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나. 여무남(余武男) 대한역도연맹회장은 언제나 내게 “내가 지금 집에 돌아가다 죽을 수도 있고 당신이 10년 더 살 수도 있는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지 벌써 9개월이 흘렀다.

간호하는 가족들도 지치기는 나와 마찬가지이다. 내가 별 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면 아내는 몹시 운다.

“내가 죽기를 바라느냐?”고 야단을 치면 더 서럽게 운다. 전에 들었던 스님 이야기가 맞다. 가족은 병간호를 안 하는 법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떨어져서 간호를 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분당 집에 있는 것보다 일산 국립암센터 병실에 있는 게 편하다. 집에 있으면 불안하고 불편하다.

병원에 가면 일단 안심이 된다. 간호사와 의사들은 밤12시도 마다하지 않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나를 대한다.

자다가 몸이 따뜻해져 눈을 떠보면 그들이 손과 이마를 만져주며 무슨 일이 없나 살펴보고 있다. 한없이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암 선고를 받고서도 이렇게 삶을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가 이처럼 좋은 의료진을 만난 덕분이다.

흔히 의사들 보고 불친절하다고 말이 많은데 한번쯤은 입장을 바꿔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평생을 괴롭고 아프고 인상을 쓰는 사람들만 만나야 하는 직업이 의사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무조건 자기 자식이 의사나 검사가 되라고 하니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요즘 병실에 누워있으면 낚시 생각을 많이 한다. 낚시는 바로 자신과의 결투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높은 파도와 거대한 물고기와 싸우던 노인…. 바로 나 자신이다. 나를 스스로 시험해보라고 하늘에서 암을 준 것 같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에 그 싸움은 시작됐다.

한때는 암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 안에 폭탄을 집어넣어서라도 그 놈을 깨부수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은 암도 코미디나 똑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코미디는 내가 이겨야 하는 상대가 아니라 즐기는 상대다. 암 역시 코미디이고, 내 몸은 코미디언인 셈이다. 이렇게 마음 먹으면 최소한 고통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6월 한달 내내 월드컵을 보면서 내가 즐거울 수 있었던 것도 암 자체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의사들도 그때는 내게 몸 상태조차 묻지 않았다.

회진을 하러 병실에 들어서기만 하면 오로지 월드컵 이야기만 했다.

“어제 TV로 미국전 보셨어요? 어휴, 이길 수 있었는데. 이번 포르투갈전은 직접 경기장에 가셔야죠? 지금 컨디션이 좋으시니까 아무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라는 말까지 했다. 나를 위해 일부러 월드컵 이야기만 했던 것이다.

다시 한번 국립암센터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26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주치의 이진수(李振洙ㆍ국립암센터 부속병원장) 박사. 그는 계속 미국에 있었으면 여기보다 훨씬 더 대접 받으며 살 수 있는 유능한 의사다. 오로지 봉사정신 하나로 환자들을 대하는 그가 자랑스럽다.

박재갑(朴在甲) 국립암센터 원장과 “혈압도 정상이고요 체온도 괜찮아요”라고 밝게 말하던 여러 간호사들도 고맙다.

이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내가 건강해지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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