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한 열혈 공무원의 손에서 한류의 역사는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해외공보관에서 일하던 정인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초빙연구위원에게 쉽지 않은 임무가 떨어졌다. 국내에서 시청률 60%에 육박하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홍콩 텔레비전에 방영되게 하라는 것. 스파이 작전을 주고 받듯 ‘사랑이 뭐길래’ 비디오 테이프를 외교행낭(외교상 보안이 필요한 물건을 주고 받는 주머니)을 통해 홍콩의 한국 영사관에 보내는 데 성공했지만 어려움은 이 때부터였다. 한국 프로그램을 전혀 방영하지 않던 홍콩 방송사가 정책을 바꾸도록 하기 위해 홍콩 내 한국 회사들의 TV 광고를 유도했고 광둥어 더빙에 적지 않은 정부 기금을 투입했다. 나중에 홍콩에서 ‘사랑이 뭐길래’를 방영하는 시간이면 거리에 사람과 차가 다니지 않게 되기까지는 이러한 숨은 노력이 있었다.
한국 드라마, 음악, 영화, 비디오 게임은 이미 전 세계 문화 현장을 장악하고 있다. 대중문화로 문화적 패러다임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을 세계인들은‘멋진 한국’(코리안 쿨)이라 부른다.
‘코리안 쿨’의 이면에는 정부의 치밀한 홍보전략이 존재했다. 1998년 글로벌 PR컨설팅 회사 에델만의 한국 지사 대표이던 이태하는 청와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외환위기 속에 나라 전체가 허우적대고 있을 때였다. “청와대가 왜 나한테 전화를 걸었을까 생각했죠. 저야 PR하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채무 위기를 떠안고 선출된 김대중 대통령의 용건은 바로 그것, ‘한국: 예정대로 영업 중’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국가 브랜드 홍보를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정부 정책이 전부는 아니다. 한류 확산의 숨은 공로자는 지독한 가난과 해외 시장개척의 어려움을 딛고 한국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한국인들이다. 저자는 박찬욱 영화감독, 드라마 ‘아이리스’의 제작자 등과 인터뷰를 통해 한국인이 대중문화 전쟁에서 어떻게 일본을 꺾고 한류를 이끌었는지를 들여다본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자 미국과 프랑스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유니 홍은 미국에서 유년기를, 부모님의 나라인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옥수수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넘쳐나던 시카고에서 그는 중국인으로 통했다. 한국인이라고 해 봤자 “뻥 치시네, 그런 데는 없거든”이란 답이 돌아왔다. 나프탈렌 냄새가 진동하는 공중화장실과 극단적인 학교 체벌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저자는 말한다. “쿨한 나라 한국의 변화는 경이롭다. 한국은 미래 그 자체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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