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태성 기자

등록 : 2018.01.08 04:40

주물 노동자가 네티즌과 소통하며 한 편 한 편 엮어 낸 이야기

등록 : 2018.01.08 04:40

독자가 만들어 낸 소설가 김동식

게시판 글 추려 소설집 3권 출간

독특한 상상력에 완성도 높아

출간과 동시에 3쇄 돌입

자신의 책 '회색인간'을 손에 들고 포즈를 취한 김동식 작가. '작가'라는 호칭이 여전히 부끄럽고, 쓴 글의 주제가 장르적 특성도 있고 하니 되도록이면 얼굴을 노출하고 싶지 않다면서 책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모자까지 뒤집어썼다.

“직원 6명에 기계 3대를 갖춘, 그래도 작지 않은 주물공장이에요.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고요.

쇳물을 틀에 부어서 작은 액세서리 종류를 찍어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반까지 아무 것도 없는 벽 앞 제 자리 앉아 일하는 단순 반복 노동이에요. 단순 반복 노동이라 지루해질 만하면 딴 생각하는 거죠. 처음 떠올린, 재미있겠다 싶은 말이나 상황, 장면 같은 걸 토대로 머릿속에서 자꾸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거죠. 얼른 집에 가서 빨리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최근 서울 화양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동식(33) 작가는 ‘작가’라는 호칭, 그리고 작가라는 이름으로 인터뷰하는 것 자체가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김 작가는 새해가 밝자마자 단편소설집 3권을 한꺼번에 내놨다.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요다)다. 그간 인터넷사이트 ‘오늘의 유머’(오유) 공포게시판에 써 왔던 350여편 단편 가운데 디스토피아적인 글, 판타지에 가깝거나 SF 성향이 강한 글을 종류별로 추려 66편을 실었다.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3쇄에 돌입했다.

인터넷 게시판에 써 올린 단편적인 글들? 우습게 볼일 아니다. 2016년 5월 첫 작품을 써 올린 이후 “적어도 3일에 1편은 올린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쓴” 결과물이다. 편당 200자 원고지 30매 분량으로 계산해도 1만매를 넘어가니 대하소설 분량은 된다. 그걸 1년 반 만에 생산해낸 것이다.

분량 외에 내용도 그렇다. 사람을 집어삼키는 빌딩과 피로를 풀어주는 정화수가 등장하는 등 독특한 상상력이 도드라진다. 그의 글에 주목한 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와 ‘대리사회’를 냈던 김민섭 작가다. 처음 봤을 땐 ‘재미있네’ 하고 말았다. 소재가 고갈될 법도 한데 계속 쏟아지는 글에, 더구나 점점 완성도가 올라가는 글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궁금증이 더해져 이메일을 보내기도 하다 마침내 연락을 해 만났다.

“초보적 맞춤법 틀리며 시작

지적·조언 등의 댓글 통해 성장”

그때서야 김민섭 작가는 김동식이 주물공장 노동자라는 걸 알았다. 여러 사정으로 중학교 졸업 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2006년 부산을 떠나 서울 성수동에서 10여년을 공장노동자로 살았다. 기묘한 우화 느낌이 드는 작품들에서 현대사회 관료주의와 노동의 냄새가 짙게 배어 나온다. 정작 김 작가는 “게시판에서 재미있다고 칭찬받고 댓글 많이 달리는 재미 때문에 열심히 썼지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다”라고 했지만.

김민섭 작가는 김 작가의 글 가운데 20편을 뽑아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에게 보여줬다. 한 소장은 1권만 낼 게 아니라 아예 3권으로 내자고 제안했다. ‘서울 성수동 액세서리 주물공장 노동자’ 김동식은 글 값으로 한번에 750만원의 돈이 입금된 통장을 받아 든 ‘작가’가 됐다.

그를 작가로 밀어 올린 건 ‘공각기동대’ 식으로 말하자면 “광대한 네트” 덕분이다. 처음 올린 작품 제목은 ‘이미지 메이킹’. 상ㆍ하 두 편으로 썼는데 상편이 재미있으면 다음 글을 올리겠다고 밝혔다. “아마 그 때 ‘하편도 보고 싶어요, 올려주세요’라는 댓글이 딱 한 개 달린 댓글이었거든요. 그게 안 달렸다면 그 다음엔 창피해서 안 썼을 지도 몰라요.” 그 ‘은인’은 연락이 닿을까. “안 그래도 고마워서 찾아봤는데, 오유에서 탈퇴하셨더라고요. 하하하.”

처음엔 “가방 끈이 짧아서” 초보적인 맞춤법이 틀리는 것은 기본이고, 책을 읽은 적도 글을 써본 적도 없으니 글을 어떻게 쓰고 구성해야 할 지도 몰랐다. 여기저기 검색도 해보긴 했지만 가장 큰 도움은 댓글이었다. 맞춤법은 물론,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글 구성과 표현, 테크닉에 대한 지적, 조언, 충고가 잇달았다. 인터넷 상황에 맞게 짧고 가독성 있는 글을 쓴다는 목표 아래 열심히 배웠다.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는 커뮤니티만의 문화가 있잖아요. 제가 여기까지 온 건 그 문화 덕분인 것 같아요.”

평론가 김윤식은 소설가 신경숙과 백낙청의 관계를 구로공단 소녀와 하버드대 출신 엘리트의 관계로 풀어낸 적 있다. 나중에 표절 사태로 빛이 바랬다지만, 분명 그 조합이 아름다웠던 순간이 있었다. 김동식과 김민섭도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저는 그냥 지금 쓰던 것 열심히 쓰고, 웹 소설 같은 다른 분야에도 도전해 보려고요.” 글감은 충분할까. “제 컴퓨터에 아이디어 메모처럼 저장된 게 한 100개 정도 돼요.” 김 작가는 낮은 소리로 웃었다.

글・사진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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