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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몽골에서 ‘최순실’을 떠올린 사연

입력
2016.11.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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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에 태극기와 몽골 국기가 내걸려 있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에 태극기와 몽골 국기가 내걸려 있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독립지사를 만날 줄은 몰랐다. 그 독립지사가 몽골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 바로 이태준(1883∼1921) 열사다.

지난해 7월 울란바토르 한쪽 산비탈에 내려보니 몽골의 2차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자이승 전망대’가 길다란 계단 끝에 우뚝 서 있었다. 울란바토르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그것도 운동이랍시고 숨을 몰아쉬며 한달음에 올랐더니 꼭대기 전망대의 공기 맛이 한결 싱싱했다.

그런데 몽골 인구의 절반인 150여 만명이 살고 있는 울란바토르의 풍경은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엉성한 골조의 콘크리트 건물이 뼈대만 세워진 채로 방치되어 있고 도심의 스카이라인도 들쭉날쭉 제멋대로였다. 산쪽에도 난개발이 진행 중이었다.

몽골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을 기린 자이승 전망대
몽골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을 기린 자이승 전망대

도심에서 몽골의 전통가옥인 게르 천막촌이나 말이 달리는 초원로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도시화가 너무 무질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은 지울 수가 없었다. 한국의 여행객들이 모두 한 마디 거든다. “도대체 어떤 놈이 건축허가를 이 따위로 내주는 거야”(건축담당 공무원), “나한테 땅만 줘봐라. 주변 경관에 어울리게 몇 십배로 잘 지을 자신 있다”(중소건설사 사장), “난개발 주범들을 파헤쳐서 모두 콩밥을 먹여야 해.”(기자), “그래도 부럽기만 하네. 땅이 끝도 없이 넓네.”(주부)

그랬다. 모두 배가 아팠기 때문이다. 대구 인구보다 조금 많은 300여 만명이 한반도 7.4배 넓이의 땅덩어리에 살고 있으니 부럽다 못해 트집을 잡고 싶었던 것이다.

난개발로 신음하고 있는 울란바토르 도심
난개발로 신음하고 있는 울란바토르 도심

잔뜩 비뚤어진 심보로 계단을 털래털래 내려와 버스에 탔더니 5분도 되지 않아 내리란다. “뭘 벌써 내리래”라며 불평하던 일행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태극기와 몽골 국기가 나란히 내걸린 정문 담벼락에 ‘이태준 기념공원’이라는 글자가 몽골어, 영어와 함께 선명한 것이었다.

몽골인들이 우리나라를 ‘솔롱고스’, 무지개의 나라로 부르기는 하지만 수도의 명당 자리에 이방인의 기념공원 건립을 허가할 정도로 가까웠나하는 의문이 스쳐갔다. 건축허가를 시비걸던 공무원은 “몽골이 우리와 뿌리가 같아”라며 추켜 세운다.

공원 안에는 널찍한 마당 한 켠에 이태준 선생의 기념관과 기념비, 묘가 있었다. 한발짝 그의 일생을 되짚는 동안 기념공원이 그 곳에 있을 수 밖에 없는 내력을 알게 됐다. 188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세브란스 의학교, 그러니까 연세대 의대 2회 졸업생이다. 안창호 선생이 만든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하다 1912년 중국 난징(南京)으로 망명했다. ‘기독회의원’에서 의사로 일하다 애국지사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1914년 몽골에서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설했다.

독립지사인 이태준 선생의 얼굴 그림이 기념관에 걸려 있다.
독립지사인 이태준 선생의 얼굴 그림이 기념관에 걸려 있다.

성병 퇴치에 앞장섰던 그는 몽골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가 됐고 1919년에는 몽골 최고의 훈장인 ‘에르데닌오치르’를 받기도 했다. 1921년 38세에 일본과 긴밀했던 러시아 백군에게 피살됐다. 한국정부는 1980년이 되어서야 선생의 업적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한국몽골학회와 연대의대 동문들이 2000년 선생을 추모해 비석을 세웠다.

실크로드 초원로에서 의술로 독립운동을 펼쳤던 선조를 만난 감회는 몇 줄의 비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도 황량하기 짝이 없는 몽골 땅에서 고독과 추위를 견디며 뜻을 세웠던 세월의 무게를 상상해보면 세상 그 누구와 비할 바 아니다.

우즈베키스탄 타시켄트의 김병화 박물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신한촌, 사이판 강제징용 해외동포 위령비, 일본 교토의 귀무덤, 중국 웨이하이 적산법화원 등 선조들의 자취가 배어있는 외국의 흔적들을 만날 때면 언젠가부터 상상력을 쥐어짜는 습관이 들었다. 무딘 감성 탓에 느낌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그 시절 그 장소로 나를 소환한다. 장소는 현장에 있으니 과거로 이동하기만 하면 된다.

몽골 최대 사찰 간등사의 회전통. 라마교에서는 이 통을 한 바퀴 돌리면 경전 한 권을 읽은 것과 같은 효험이 있다고 한다.
몽골 최대 사찰 간등사의 회전통. 라마교에서는 이 통을 한 바퀴 돌리면 경전 한 권을 읽은 것과 같은 효험이 있다고 한다.

몽골 최대의 사찰인 간등사에서 양철통 같은 회전 기도통을 끊임없이 돌린다. 라마교 교리에 보면 통을 한 바퀴 돌리는 것은 경전 한 권을 읽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손은 끊임없이 통을 돌리고 있다. 문맹자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때마침 대통령궁 앞 수하바타르 광장에서는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거대한 칭기즈칸의 동상 앞에 넓게 펼쳐진 광장에서 결혼식을 하는 사람은 그 동네에서 엄청난 권력가임에 틀림없다.

권력이 얼마나 무상한지는 동서고금이 지적하고 있지만 인간들은 부나방처럼 직진, 또 직진이다. 매일마다 고구마 줄기처럼 국정농단 스토리가 새로 업그레이드되는 최순실을 보면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읇조려 본다. 그런 최순실도 최근 딸내미의 남자친구를 떼내기 위해 조폭을 동원하려 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권력으로 안 되는 세상일도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산 좋고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곳은 찾기 힘들다.

울란바토르 수하바타르 광장에 몽골 전통복장을 입은 노부부가 산책을 하고 있다.
울란바토르 수하바타르 광장에 몽골 전통복장을 입은 노부부가 산책을 하고 있다.

몽골인의 삶과 문화를 짧은 시간에 이해하는데는 전통 민속공연이 제격이다. 소극장 형태의 투멍이흐 전통 민속공연장에서는 사자와 사슴, 까마귀, 노인 등으로 분장한 탈춤과 여러 악기 중 두드러지는 마두금 공연, 몸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애크로배틱이 이어졌다. 이 중에도 최고를 꼽는다면 단연코 ‘허미’라고 불리는 음악이었다. 혀 안부분과 목으로 휘파람 소리와 베이스 같은 저음이 동시에 몇 분간 이어진다. 호흡이 얼마나 긴지 듣는 이가 숨 넘어갈 지경이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득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흘린 땀방울이 꽤나 많았으리라 짐작됐다. 세상 사람들의 사는 방식은 다르고 또 달랐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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