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사인은 질식사지만…
부엌칼과 야구방망이가 현장에
둔기로 뒷머리 맞고 의식 잃은 듯
그외 외상은 없이 기도에 그을음
꼭 10년 만이다.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던 사건을 다시 맡게 될 줄이야. 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의 입과 손을 청테이프로 꽁꽁 묶고 불을 내 죽인 잔혹한 범죄. 울산을 떠들썩하게 했던 ‘남구 초등학생 화재 사망사건’ 당시 나는 울산 남부경찰서 강력팀 소속으로 초동 수사를 맡았다. 지난 1월 울산경찰청 미제전담수사팀장으로 발령받은 뒤 사건 파일을 다시 꺼내 들었다. 사진 속 희생당한 아이의 모습은 10년 전 그대로다. 살아 있었다면 고교 2학년이 됐을 아이. 어린 생명을 무참히 살해한 범인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청테이프에 묶인 채 숨진 8세 소년
가을이라고 하기엔 여전히 무더웠던 2006년 9월 6일 오후 3시 52분. 강력4팀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화재 현장에서 사람 발견. 달동 A아파트 13층….” 진압이 한창이던 현장,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연기 사이로 소방대원이 초등학교 1학년 박정호(가명·당시 8세)군을 업고 나왔다. 정호의 입과 양 손은 청테이프로 묶여 있었다. 소방대원이 다급히 테이프를 떼어냈지만 아이는 이미 숨진 뒤였다.
15평 남짓한 집에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 뿌린 물에 집기가 튕겨나가며 집은 아수라장이었다. 정호는 큰방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정호 옆엔 검게 그을린 야구방망이와 부엌칼이 놓여 있었다. 부검 결과 정호의 직접 사인은 질식사. 오른쪽 뒷머리를 한 차례 둔기로 세게 맞아 생긴 상처 외에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기도에 약하게 남아있는 그을음으로 미뤄 볼 때 정호는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고 호흡이 약해진 상태에서 발생한 화재 연기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 방화 사건, ‘미궁’ 많은 이유)
범인은 큰방과 작은방에 불을 지른 뒤 진열장 위에 놓여있던 열쇠로 현관 문까지 잠그고 사라졌다. 사건 직후 베테랑 형사 50여명이 수사본부를 차리고 범인을 쫓았지만 오리무중이다.
문 열고 있던 아이…면식범 소행일까
“정호야, 집 도착했나? 엄마 교육가니깐 문 잘 잠그구 쌤 오실 때까지 숙제 단디하고 있으래이.” 사건 당일 낮 12시38분. 조금 전 같은 반 친구 시후(가명)와 함께 집에 도착한 정호는 엄마의 전화에 “알았다”고 답했다. 모자간 마지막 통화였다.
엄마의 당부와 달리 정호는 현관문을 열어놓은 채 있었다. 차량 탁송기사로 일하던 아버지 박모(54)씨는 일 때문에 새벽에 집을 나섰고, 인근 노동부 인력개발센터에서 교육 받던 어머니도 낮 12시부터 집을 비운 참이었다.
학교에서 함께 돌아와 정호와 놀던 시후는 40분 뒤 집을 나섰다. 시후는 “나올 때 정호는 TV를 보고 있었고 문은 열린 상태”라고 진술했다. 대각선 방향 옆 동에 살고 있던 지인 B씨도 "오후 1시 45분쯤 정호네 집을 봤을 땐 문이 열려있었지만 50여분 뒤 다시 봤을 땐 닫혀있었다”고 했다. 2시 30분 집을 찾은 방문학습지 교사 C씨도 잠긴 문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자 포스트잇만 붙여놓고 다른 집으로 향했다. 그래서 범행 추정시간은 1시 45분에서 2시 30분 사이.
정호는 왜 문을 연 채로 있었을까. 더운 날씨 탓이었을까. 아니면 TV 보느라 문 닫는 것을 잊었을까. 정호 엄마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열린 문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낯선 이에게 격렬히 저항했거나 제압을 당했다면 손톱 밑 등에서 범인의 유전자정보(DNA)가 나왔거나 또 다른 상처가 있어야 했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은 점도 이상했다.
학교폭력? 원한? 가정폭력?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정호는 내성적인 성격이긴 했지만 학교나 가정에서 잘 지냈다. 부모가 주변의 원한을 사지도 않았다. 게다가 이날 집을 다녀간 사람들은 죄다 범행 시간대 알리바이가 있었다.
면식범이 아니라면 혹시 제3의 인물일까. 1993년 준공된 A아파트는 복도식 구조다. 입구는 물론 단지 내부에도 폐쇄회로(CC)TV는 없었다. 보안장치 없는 유리문은 늘 활짝 열려있었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들어올 수 있는 구조다. 절도 혹은 강도범이 문 열린 정호네 집에 들어와 칼을 들고 위협하는 바람에 정호는 반항을 할 수 없었고 단 한 차례 가격에 의식을 잃었을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인근 전과자, 중·고등학생까지 1,000명 넘게 살펴봤지만 범인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화장대 서랍을 뒤져 귀금속 5점을 가져가긴 했지만 같이 있던 현금과 정호의 목에 걸려 있던 금 목걸이는 고스란히 남아있어 금품 목적 범행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사라진 귀금속이 유일한 해결 단서
가장 난감한 건 증거물 확보였다.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야구방망이와 칼, 청테이프 어디에도 놈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족적도 물살에 쓸려 사라졌고 목격자도 없다. 유일한 단서는 놈이 가져간 정호의 이름과 주민번호가 새겨진 목걸이용 메달, 전화번호가 새겨진 아기 팔찌 등 귀금속 5점(당시 시가 100만원). 장물 전단을 만들어 부산과 울산 지역 금은방에 뿌렸다. 10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지만 아직도 실낱 같은 기대를 놓지 않는다.
새로 수사에 착수하며 10년 만에 다시 정호의 부모를 만났다. 사건 발생 후 부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울산을 떠나 부산으로 이사해 지금까지 둘이 살고 있다. 정호의 엄마는 여전히 아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내성적이었지만 엄마에게만은 뽀뽀도 잘 하고 애교가 넘치던 아들이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혹시 새로운 단서가 나올까 싶어 A아파트를 다시 찾았지만 10년 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이 이사 갔고 경비도 바뀌어 있었다. 맨 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경찰인생 26년. 내가 맡은 살인사건 중 해결되지 않은 것은 이 건이 유일하다. 형사의 자존심을 걸고 채 피지 못한 어린 소년의 목숨을 앗아간 그 범인을 꼭 잡고 말겠다.
울산=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이 기사는 울산경찰청 미제전담수사팀 장갑병 팀장의 시점에서 재구성했습니다. 사건 관련 제보는 울산경찰청 미제전담수사팀(052-210-2772)
☞ 잊어도 될 범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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