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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칼럼] 3ㆍ1절에 생각하는 21세기 한일관계

입력
2017.02.2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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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대일 의식

일본의 정치ㆍ외교ㆍ안보 성과 부러워

공동가치에 기반한 선린우호가 필요해

3ㆍ1절 아침이다. 매년 그랬듯, 전국 각지에서 일제에 항거한 3ㆍ1 독립정신을 기리는 기념식이 거행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일본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한일 간에 체결된 위안부 합의나 군사정보보호협정을 폐기하거나 재협상하자는 논의가 분출한 바 있다.

일제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일본에 대한 저항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더욱이 2010년을 기점으로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지위를 중국에 내준 이후, 한때 국가발전의 모델이었던 일본의 정치외교와 경제정책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의 기억에만 사로잡혀 일본의 잘못된 인식과 행태를 비판하는 데 머물러 있는 사이, 일본 정부는 외교나 경제정책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선 외교정책이다. 트럼프 행정부 등장에 따라 미국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주요 국가들이 미국발 외교정책에 불확실성과 불안을 느끼는 사이, 일본 아베정부는 발 빠른 외교와 어젠다 선정으로 미일 관계를 최대한 안정시켰다. 지난해 11월18일, 트럼프 당선자와 뉴욕에서 긴급 회담을 가진 데 이어, 2월 10일부터의 방미를 통해 워싱턴과 플로리다에서의 정상회담이나 골프 회동을 가지면서 미일 양국은 센카쿠 문제나 핵우산 제공 문제에 대한 기존 합의를 재확인하고 지도자 간의 신뢰를 공고히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아베노믹스로 표현되는 경제정책 성과에 대해서는 논의가 분분하지만, 적어도 청년고용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일본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때 ‘잃어버린 20년’으로 자조되던 일본 경제의 불황 국면이 적극적인 재정과 금융정책에 힘입어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고, 이에 따라 최근 일본 대학생들은 졸업하기 전에 취업할 직장이 결정된다. 우리가 지난 몇 년간 ‘창조경제’ 등의 슬로건으로 여러 경제정책을 폈지만, 청년고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답답한 현실에 비추어 부러운 현상이다.

안보정책에서도 일본의 대응은 참고할 만한 게 적지 않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직면, 일본 정부는 이미 1998년부터 미국과의 미사일 방어체제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2007년에 해상 배치형 방어시스템과 육상 배치형 방어시스템을 각각 실전 배치했다. 미사일 방어체제 연구와 개발에 매년 소요되는 100억달러 정도의 신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재무성의 결단으로 기존 육상자위대 장비와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군사 변혁적 조치를 취한 점도 눈여겨볼 점이다. 헌법상의 제약 속에서도 국가안보를 위한 실질적 준비를 일관되게 지속하는 일본의 자세는, 주한미군 사드미사일 방어체계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제는 2020년 이후에야 구축한다는 우리 실정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일본과는 역사나 영유권 문제 등 타협할 수 없는 갈등 현안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의 여러 나라 가운데 그나마 국가의 규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근본적 가치를 공유한 게 일본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와 달리 한국과 일본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도 아니고 NPT 체제 하에서 인정되고 있는 핵 보유국도 아니다. 그러한 특징을 공유하는 일본이 선택하는 경제 외교 안보정책은, 한국의 발전을 위하여 여전히 유용한 점이 있다.

90여년 전 발표된 독립선언서는 일본 제국의 강권주의와 침략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일시적 감정으로 타국을 배척’하려는 태도는 경계했다.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한국이 무시할 수 없는 국제적 위상을 가진 국가로 성장한 지금의 시점이야말로, 감정을 앞세운 대일정책을 지양해야 할 때이다. 3ㆍ1 독립선언서에서도 제시됐듯, ‘진정한 이해로 우호적 신국면을 타개’하고 ‘동양평화’를 모색하는 한일관계 구축의 전략이 필요하다.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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