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지난 9, 10일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 모여 공동학술대회를 가졌다. 이중 9일 전체 회의에서 고려대 장하성 교수가 ‘국민은 어떤 한국경제를 원하고 있는가- 좌표와 지향점’이라는 제하의 발표로 많은 참석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필자도 이미 주요 내용을 접하고 있었지만, 장 교수의 논문은 이 분야 논의를 집대성하고 체계화하였기에 상당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논문에 따르면 1990년대 말에 닥친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소득 불균형이 크게 심화되었는데, 핵심은 1990년에 국민총소득의 70.1%를 차지하던 가계소득이 2015년에는 62.0%로 줄어든 데 반해, 기업소득은 같은 기간 동안 17.0%에서 24.6%로 크게 늘어난 점이다. 한 마디로 소비를 통해 미래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야 할 가계는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는데 소비하지 않는 기업은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가계 내부에서도 소득이 낮은 계층의 소득이 더욱 줄어들어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기업도 대기업으로 부가 집중되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이 모든 소득 불균형 현상이 개선되는 추세였는데, 외환위기 이후 위에서 언급한 방향으로 줄곧 악화해 왔고, 현재 우리나라의 소득 불균형 정도는 OECD 국가 가운데 거의 바닥 수준이라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이 논문에서 이런 우울한 모습만 보여줬을 뿐,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토론자들과 나아가서는 이 글을 읽게 될 정책 당국자들에게 맡겼다. 이어진 토론과 반론은 생략하고 여기서는 모두가 이 문제를 아래와 같이 함께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결국 부자가 된 기업, 특히 대기업이 돈을 풀지 않으면 소득 불균형의 실마리는 찾지 못하게 된다는 숙제가 우리 앞에 놓인 셈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법은 기업소득에 법인세 등을 높이 부과해서 정부 재원으로 마련한 다음 이를 가계에 직접 재분배하거나 새로운 사업에 투입하는 방법, 또는 점점 부를 독점해 가는 대기업의 활동을 제약하는 방법일 것이다. 현 정부 중반에 취해진, 기업의 사내 유보금을 끌어내려 했던 조치도 같은 맥락의 정책대안이었다.
그런데 이런 정책 대안이 당초 목적과는 사뭇 다른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즉, 대기업에 더 높은 세금과 더 강한 규제를 부과하게 되면, 대기업은 국내 경제활동을 해외로 이전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기업들이 국내에서는 투자할 거리를 찾을 수 없다고 불평하고, 굵직굵직한 투자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정도다. 지난주 중반에 발표됐듯, 작년 해외직접투자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이를 증명한다.
이렇게 기업이 해외로 나가서 얻은 소득의 일부는 다른 나라 근로자들의 임금과 외국 투자자들의 배당소득으로 나가게 된다. 기업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만큼 소득이 늘어나지만, 기업의 해외활동은 국내 가계에 소득을 안겨주지 못하므로, 그 결과가 장 교수 지적의 중요한 원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지금 부자가 된 기업들로 하여금 국내에 더 많이 투자를 하게 하는 것이 더 유효한 정책 대안이 된다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의 국내투자가 늘면 국내의 경제활동이 더 활발해지고 일자리도 많아지면서 국내의 가계로 소득도 더 많이 흘러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렇지 않아도 대기업들에 집중되고 있는 경제활동의 독점화가 더 진행된다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그래서 향후 대기업의 투자를 유도할 분야로서 새로운 창업기업의 사업화를 이끌고 중소기업의 기술개발과 글로벌화를 도와주는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이 경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기업들이 이들 작은 파트너들과 공정한 협업을 하도록 유도하고, 기술ㆍ사업 탈취 같은 반칙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도훈 경희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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