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조영식 설립자가 설문조사
100년후 국민소득 500달러 예측
미래 최대 문제로 '인구증가' 꼽아
# 1964년 7월 경희대 설립자 고 조영식 박사는 5개 단과대학 재학생 1,000여명에게 설문을 돌렸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미래 대학의 모습과 한국사회 및 세계정세의 변화상 등 25개 질문을 던졌다. 그 해 10월 세상에 나온 설문보고서에는 ‘100주년 개교기념식에 보내는 메시지’란 제목이 달렸다. 단순히 당시 대학생들의 생각을 엿보는 데 그치지 않고 2049년 개교 100주년을 맞는 후배들에게 60년대 선배들의 꿈과 이상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 2013년 조인원 경희대 총장과 보직 교수들은 고민에 휩싸였다. 개교 65주년이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뭔가 의미 있는 사업을 해야 했는데,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 2012년 작고한 설립자의 설문보고서가 생각났다. 서울캠퍼스 본관 중앙회의실 금고에서 유품 정리 도중 발견된 보고서는 훼손이 심각한 탓에 11개 문항밖에 복구되지 않았지만 50년 전과 현재 대학생의 인식 변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료로 안성맞춤이었다.
경희대는 곧 재학생, 교수, 교직원 등 1만여명을 대상으로 대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 국내외 현실에 대한 진단 및 예측 등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반세기 시간을 건너뛴 보고서는 ‘미래대학 리포트’라는 이름으로 20일 결실을 봤다.
그 사이 대학생들의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64년 보고서는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올 법한 조사 결과가 다수 있다. 당시 많은 경희대생들이 2049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29%)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보다 적은 400달러, 300달러도 각각 25%나 됐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 77달러를 기준 삼아 내놓은 예측이지만, 이미 2012년 2만달러를 돌파한 오늘의 현실과는 큰 차이가 난다. 결혼 적령기를 묻는 질문에도 18세(53%)란 응답이 가장 많아 만혼이 일반화한 요즘 추세와 동떨어진 예상을 내놨다.
직접 비교가 가능한 설문 항목을 보면 시대상황을 평가하는 양 세대의 시각 차이가 극명하게 느껴진다. 과거 대학생들은 미래 사회가 부딪칠 최대 화두로 ‘늘어나는 인구(38%)’와 ‘식량난(21%)’을 지목했다. 반면 현 세대에서는 ‘국가 간 부의 양극화(25.8%)’가 핵심 이슈로 떠올랐으며 ‘기후 변화(16.9%)’ ‘생태계 위기(13.9%)’ 등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당면 문제로 인식했다.
한반도 통일을 두고서도 60년대에는 ‘가능하다’는 응답이 65%에 달했으나 현재는 절반 가까이가 ‘불가능하다’고 답해 회의적 시각이 더 늘었다. 또 과거 대학생 4명 중 3명은 ‘제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세계평화를 낙관했지만, 최근에는 10명 중 9명이 ‘인간의 폭력과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다’며 상반된 견해를 내놓았다.
대학과 사회에 대한 대학생들의 비관론은 과거보다 치열해진 입시, 취업난 등 각박한 외부 환경에서 비롯됐다는 풀이가 나왔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절반 이상은 대학교육을 받는 이유에 대해 ‘취업대비와 학벌을 위해서’라고 답해 ‘학문 탐구(18.9%)’ ‘가치관 형성(15.4%)’을 앞섰다. 그러면서도 대학 구성원 3명 중 1명이 대학의 미래 가치로 ‘자아성찰과 진리탐구’를 꼽아 현실과 이상이 괴리된 모습을 보였다.
리포트 작성을 총괄한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유정완 학장은 “팍팍해진 시대상이 지금의 대학생을 냉철한 현실주의자로 만들었다”며 “다만 이들도 대학의 위기를 ‘인정’하는 것일 뿐 ‘긍정’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변화의 여지는 있다”고 설명했다. 경희대는 ‘2065년의 고등교육’이라는 주제로 23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열리는 세계대학총장회(IAUP)에 참석해 이런 결과를 세계 대학과 공유할 예정이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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