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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장티푸스 메리

입력
2018.02.11 13: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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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은 병을 옮긴다. 세균의 종류는 다양하고, 그만큼 다양한 병이 있다. 특정한 질환의 세균은 인체로 들어가 환자를 감염시켜 그 질환의 증세를 일으킨다. 감염된 사람의 체액이나 비말, 분변 등에서 그 특정균이 분비되고, 그것이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가면 병이 옮는다. 그 중 감염되었어도 면역이 있어 특정한 증상이 없는 사람이 있다. ‘무증상 보균자’다. 메르스 사태 때 언론에 자주 언급되어 친숙한 단어다. 체액이 감염되어 있지만 겉으로는 건강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염원이 될 수 있다.

이 세균학의 기초는 현대인에게 상식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이 이론이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특히 '무증상 보균자'에 대한 이론은 백 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이 이론이 잉태하고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언급할 한 사람이 있다. 인류 방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 일명 '장티푸스 메리'다.

그녀의 본명은 메리 맬런이다. 1869년에 아일랜드에서 태어났고 생면부지 뉴욕에서 혼자 살았다. 상류층 가정에 고용되어 일하는 요리사였다. 1907년의 어느 날, 그녀가 일하던 집에서 장티푸스가 창궐한다. 당시 사건을 조사하던 의사 조지 소퍼는 이 집의 깨끗한 환경을 보고, 도저히 이전의 이론으로 장티푸스가 발병한 까닭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얼마 전 고용된 요리사 메리를 의심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그녀가 '무증상 보균자'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녀가 이전에 일했던 집들도 하나같이 다량의 장티푸스 발병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이 추측은 확신이 된다.

실제 메리는 장티푸스의 무증상 보균자였고, 분변에서 다량의 균을 배출하고 있었다. 조지 소퍼는 어서 추측을 확인하고, 메리를 격리해서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야 했으며, 학계에 보고해서 업적을 알려야 했다. 그래서 메리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당시 상식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녀는 건강했고,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왜 격리 당해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결국 문전박대를 당한 조지는 공권력을 동원해 메리를 '체포'한다.

이제부터 메리의 불행이 시작된다. 그녀는 섬에 있는 병원에 갇혀 3년을 살았다. 체포 과정이 낱낱이 신문에 보도되고, 판매 부수에 급급한 황색언론에서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 '인간 장티푸스 균' 등의 별명을 얻는다. 본명과 사진이 공개되고, 해골을 프라이팬에 넣는 삽화로 희화화된다. 모든 사람이 그녀를 구경거리로 여긴다. 요리사 일을 그만둘 것을 서약하고 3년 만에 섬에서 풀려나지만 도와줄 사람은 없었고 생계는 막막했다. 결국 가명으로 다시 요리사를 하다가 그 집에서 장티푸스가 발병해 5년 만에 또 체포된다. 그리고 23년 간 섬에 갇혀 나오지 못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보균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의 상식과, 자신이 처한 상황이 그랬다. 하지만 분변에서 장티푸스 균이 나온다고 사람을 평생 섬에 가둬야 할 이유는 도저히 없었다. 그 뒤에 발견된 무증상 보균자들은 섬으로 가지 않았다. 오로지 메리만 섬에서 평생을 외롭게 살다가 죽었다.

무증상 보균자는 인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발견된 무증상 보균자의 인생이 완벽히 망가진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막연한 공포감과, 꼭 특정한 대상에게 손가락질해야 하는 사람들, 심지어 여성에게 '악녀'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었다. 현대 의학이 완벽해 보이지만, 실은 1900년에도 의학은 '현대 의학'이었다. 지금의 우리도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손쉽게 누군가를 지탄할 수 있는 현세에서, 악의 없이 불행했던 '장티푸스 메리'는 더욱 기억할 가치가 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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