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층,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투표 심리 약화
“며칠간 후보 더 지켜보겠다” 민심
단일화 기대 ‘전략적 유보’ 여론도
“호남 잡아야 대선 이긴다”
문재인ㆍ안철수 지지자 경쟁적 투표 참여
19대 대선 사전투표율 전국 2위 전남, 꼴찌는 대구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한 19대 대선 사전투표에서 영ㆍ호남 유권자들의 모습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조기대선 운동장이 야권으로 급격히 기울자 보수 성향의 영남에선 후보 단일화 등을 기다리는 '전략적 선택 유보' 성향이 나타났다. 반면 호남은 야권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지지자들이 경쟁적으로 사전투표에 참여하면서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사전투표율로만 비교했을 때 서고동저의 정치적 지형이 뚜렷했다.
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19대 대선 지역별 사전투표율 현황에 따르면, 세종시가 34.46%가 가장 높았고 전남이 34.04%, 광주가 33.67%, 전북이 31.64%로 뒤를 이었다. 반면 영남은 하위권을 형성했다. 17개 시도 가운데 부산이 23.19%로 15위를 기록했고,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는 22.28%로 꼴찌를 차지했다.
영남에서의 사전투표율 부진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인한 보수층의 적극적 투표 심리 약화가 첫 번째 이유로 꼽힌다. 류재성 계명대 교수는 “탄핵으로 인한 심적 타격이 어느 지역보다 큰 영남 유권자들이 그 여파로 후보 결정 역시 유보하고 있다”며 “보수층 지지를 원하는 후보들을 중심으로 남은 며칠을 더 지켜보겠다는 민심이 강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도 “대구의 사전투표율이 낮은 것은 보수 후보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못 장악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민심 밑바닥의 보수표는 아직도 움직이고 있다”고도 평가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최근 영남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지난 해 총선 당시의 대구(10.13%) 부산(9.83%) 사전투표율 기록은 갱신했지만, 18대 대선 직전처럼 특정 후보를 중심으로 응집력 있는 보수표 결집까진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막판 보수 후보 단일화를 기대하며 전략적으로 투표를 유보하는 여론도 감지됐다. 18대 대선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막바지에 사퇴한 것처럼, 이번 대선에선 자연스럽게 보수 측 후보들이 힘을 합치지 않겠냐는 기대가 지역 내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예전에는 (영남 유권자들이) 내가 투표해야 보수 후보가 이긴다고 생각 했는데, 지금은 바른정당 사태 등에 따라 다르게 대선에 접근하고 있다”며 “반드시 보수 후보가 이겨야 한다는 측면보다 (단일화 등으로) 보수가 결집해야 내년 지방선거 등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호남에서의 높은 사전투표율은 이 지역의 적극적인 정치 성향에, 문재인-안철수 후보 지지세력 간의 경쟁적 투표까지 이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해 19대 총선 사전투표에서도 호남은 18.85%로 1위를 기록한 전남을 필두로, 전국 평균 12.19%보다 5%포인트 높은 17.3%의 평균 투표율을 보인 바 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여론분석실장은 “’호남을 잡아야 대선에서 이긴다’고 판단하고 있는 문재인-안철수 후보 측이 사전투표부터 적극적으로 경쟁을 펼치고 있어 이전 선거보다도 호남 투표율은 더 상승했다”고 말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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