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지하철역 승강장 고장 난 스크린도어(안전문)를 수리하다 숨진 김모(19)군은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의 외주업체 은성PSD 직원이었다. 김군은 이 업체에서 박봉과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다 가방에 컵라면 하나 남긴 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청 만능주의로 인한 안전참사가 끊이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을 담보로 작업현장에 나서는 ‘제2의 김군’들이 곳곳에 있다. 효율 증진이라는 미명 아래 안전과 생명에 대한 책임까지 외주화하는 경향이 일반화하면서 위험을 떠안은 노동자들이 신음하고 있다.
김군 사고를 바라보는 이성준(21ㆍ가명)씨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다. 업무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이씨도 김군처럼 스무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서울메트로의 다른 외주업체 P사에 입사해 전동차 정비 일을 하고 있어서다. 김군 추모 공간이 꾸려졌단 소식에 지난달 30일 구의역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이씨는 “어린 나이에 위험한 현장에 투입돼 마음 졸이며 일했을 김군을 떠올리니 남일 같지가 않아 가슴이 미어진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씨가 다니는 P사는 2011년 서울메트로가 직원들을 퇴사시켜 만든 승강기안전문 관련 외주업체 은성PSD와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P사 역시 서울메트로가 2008년 인력 구조조정 과정에서 시설 유지ㆍ정비 등 안전 관련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전동차의 경정비 업무를 위탁 받았다. 서울메트로 측은 당시 은퇴를 앞둔 직원들에게 정년과 복지를 보장하면서 40여명을 이 회사로 전적시켰다. 이후 부족한 인력은 업체에서 자체 채용해왔다. 그러다 보니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고교를 갓 졸업한 10, 20대의 어린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게 일반화했다.
이씨도 2013년 서울의 한 공고 3학년 2학기 재학 중 P사에 입사했다. 그는 김군이 생전 겪었을 고된 일상과 위험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고 했다. “1,500볼트의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동차 아래서 온종일을 보내면 생명을 위협 받는 상황이 자주 일어나요. 지난 2월에는 감전 사고로 자칫 큰 부상을 입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평소대로 전동차 브레이크를 점검하던 중 잠시 끊어놨던 전류가 별안간 흐르기 시작했는데, 다시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주변 동료들이 이씨에게 “빨리 전동차에서 나오라”며 소리치지 않았다면 생명까지 위험했을지 모른다. 이씨는 “보통 전류를 가동하기 전 방송이 나오고 전동차 위 아래에 달린 불빛이 켜지는데 그 날은 신호가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며 “귀마개를 끼고 작업하기 때문에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토로했다.
여름이면 불안감은 배로 커진다. 안전을 위해 착용하는 방진복이 금세 땀에 젖어 몸을 재빨리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전동차 밑에 들러붙은 먼지들을 털어내는 작업을 하는 날이면 눈 앞이 온통 검은색 먼지로 뒤덮여 20m 앞에 있는 비상등도 안 보이기 십상이다.
열악한 조건투성이지만 그가 스스로 안전을 챙길 여력은 거의 없다. 전동차 당 점검ㆍ정비 목록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직원 10여명이 달라 붙어도 시간은 늘 빠듯하다. 게다가 서울메트로 소속 정규직 직원들이 정비에 나서기 전까지 무조건 작업을 마쳐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이씨는 “같은 공정에서도 부품을 닦고 오일을 바르는 것 같은 잡일은 우리 외주하청업체 비정규직 몫이고, 정규직은 부품 교환을 담당한다”며 “정규직에 피해를 안 주려면 눈치껏 일을 끝내놔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 서울메트로 측이 강사 등을 초빙해 정기 안전 교육을 실시하지만 어디까지나 정규직에 한해서다. 외주업체 직원들의 경우 출ㆍ퇴근부 곁에 놓인 화재, 소방 등 관련 문서를 읽는 게 사실상 안전교육의 전부다. 교육 요구는 꿈도 못 꾼다. 은성 PSD처럼 P사도 최저가낙찰제를 통해 선정돼 예산 여유가 있을 리가 없다. P사는 서울메트로가 2015년 7월부터 1년간 75억원에 입찰한 전동차 경정비 위탁용역비를 63억원에 따냈다. 수주가가 낮아질수록 직원 복지에 쓸 여력도 그만큼 사라지는 셈이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하루 8시간씩 갖은 위험과 싸우며 이씨가 받는 급여는 월 150만원 안팎이다. 그는 이 돈으로 몇 해 전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사회복무요원인 형(22)을 대신해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아버지가 투병 생활할 때 진 빚을 갚고 월세 60만원을 겨우 충당하는 정도다. 요즘엔 교통비마저 아끼려 집에서 4㎞ 떨어진 근무지까지 자전거로 출근하고 있다. 이씨는 “건실한 공기업과 협업하는 회사에 취직했다며 기뻐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쉽게 일을 그만둘 수도 없다”며 “지금 상황에선 저축은 꿈도 못 꾸는데 결혼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P사 소속으로 4년째 일하고 있는 윤준수(26ㆍ가명)씨도 이씨와 사정은 비슷하다. 윤씨는 서울의 한 공고를 졸업한 후 군대에 다녀와 곧장 입사했다.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부모님과 서울 월셋방에서 함께 사는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서다. 누구보다 일에 열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오는 회의감은 어쩔 도리가 없다. 윤씨는 “동료들이 전동차 위에서 일 하다가 틈새로 발이 빠지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목격하면 가슴이 먹먹하다”며 “부상을 입어도 자비로 치료해야 해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퇴사를 생각하다가도 매번 머뭇거리게 되는 건 ‘혹시 정규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다. 서울지하철노조 비정규지부에 따르면 서울시 교통본부장과 서울메트로 사장은 지난해 4월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통합될 경우 외주정비업체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통합 추진 과정에서 자회사를 설립해 정비 업무를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윤씨와 동료들은 좌절하고 있다.
“나이 어렸던 김군도 다쳤을 때 아픈 내색 한 번 못했을 거예요. 늘 ‘소리 없는 아우성’만 칠 뿐이죠. 생명을 저당 잡히고 일하는 외주업체 노동자들에게 한 번쯤 관심을 가져 주길 부탁 드립니다.” 이씨의 간절한 목소리가 구의역 추모공간을 울렸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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