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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학 칼럼] 빈 가게가 늘어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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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학 칼럼] 빈 가게가 늘어나는 까닭

입력
2018.08.13 17:00
수정
2018.08.14 11:15
26면
0 0

최저임금ㆍ근로시간 탓은 견강부회

자영업의 종말은 지구촌 공통 현상

정책적 구조조정으로 활로 열어야

자영업의 몰락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디지털혁명이 초래한 온라인 쇼핑의 성장과 비대면 영업의 확산이 근본 원인이다. 더욱이 한국의 자영업자는 전체 취업자 4명 중 1명꼴로 포화 상태다. 그 비중이 선진국의 서너 배 수준이다. 가계는 부채의 덫에 빠져 소비를 늘릴 여력이 없고 전체 인구도 곧 감소세에 접어든다. 카드 수수료와 임대료 조정으로 살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과 보건의료 분야의 규제 혁신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다. 사진은 서울 이화여대 앞 1층 상가가 텅 비어 있는 모습. /김주성 기자
자영업의 몰락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디지털혁명이 초래한 온라인 쇼핑의 성장과 비대면 영업의 확산이 근본 원인이다. 더욱이 한국의 자영업자는 전체 취업자 4명 중 1명꼴로 포화 상태다. 그 비중이 선진국의 서너 배 수준이다. 가계는 부채의 덫에 빠져 소비를 늘릴 여력이 없고 전체 인구도 곧 감소세에 접어든다. 카드 수수료와 임대료 조정으로 살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과 보건의료 분야의 규제 혁신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다. 사진은 서울 이화여대 앞 1층 상가가 텅 비어 있는 모습. /김주성 기자

활기찬 상가는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경제의 생동감을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불황으로 상권이 썰렁해진 탓일까. 시내를 걷다 보면 도시 빛깔이 칙칙하게 변해가는 느낌이다. 며칠 전 신촌과 이화여대 근처에 갔을 때도 그랬다. 대로변 1층 상가조차 빈 가게가 즐비했다. 곳곳에서 분식점 미장원 등의 낡은 간판이 걸린 상가건물을 헐고 오피스텔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핵심 상권이라는 종로, 강남 테헤란로 등도 예외는 아니다.

빈 가게가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표면적으로야 장사가 안 돼 임차인 구하기가 어려워진 탓일 게다. 일부 언론에선 글로벌 경기는 호황인데 유독 한국만 어려운 듯 소득주도 성장을 비난한다. 정부가 밀어붙인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못 견뎌 문 닫는 점포가 속출한다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회식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과장된 분석도 더해진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의 후유증을 부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의 감소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에선 작년 1년 동안 9,000개 점포가 매출 부진으로 문을 닫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많은 숫자다. 올해는 1만2,000개 매장이 문을 닫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서도 지난해 슈퍼마켓, 의류점, 생활용품점 등 5,855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디지털기술이 초래한 온라인 쇼핑의 성장과 비(非)대면 영업의 확산 때문이다.

해외 언론은 소매업의 종말이 머지않았다고 경고한다. 지금은 출근버스에서 냉장고를 사고 침대에 누워 가방을 구입하며 거실에 앉아 대출을 신청하는 시대다. 한국씨티은행은 오프라인 점포를 133곳에서 44곳으로 줄였다. 최근 5년간 국내에서 1,000곳 넘는 은행 점포가 사라졌다. 가정용품ㆍ식료품 매장도 온라인 쇼핑 공세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상가 과잉 공급도 원인이다. OECD 회원국은 대부분 소비 및 인구 성장이 정체기를 맞았다. 그런데도 부동산 개발과 상가 공급은 지속됐다. 특히 한국은 노후 대비가 취약한 중ㆍ장년층을 노려 코엑스 알파돔시티 등 신상권과 주상복합 건물이 대량 공급됐다. 역세권과 신도시에도 복합상가와 상가주택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서울의 노른자위 상권이 비어가는데 지방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완공 2년이 넘도록 절반 이상 공실로 남아 있는 유령상가가 넘쳐난다. 지방경제 비중이 큰 토호 건설사들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한 업보다.

상가 주 수요층인 자영업자는 포화 상태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전체 취업자의 25.4%로 미국(6.3%) 일본(10.4%)보다 훨씬 높다. 음식숙박업의 3년 생존율이 30%에 불과할 정도로 과당경쟁이 심하다. 내수 확대도 기대 난망이다. 가계는 부채의 덫에 빠져 소비를 늘릴 여력이 없고 인구도 곧 감소세로 접어든다. 자영업자의 질도 좋지 않다. 베이비부머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자영업자 10명 중 3명은 디지털 환경에 취약한 60세 이상이다. 데이터 분석에 기반해 소비 패턴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금세 도태되는 게 현실이다.

청와대는 ‘자영업 비서관’을 신설하고 카드 수수료 인하, 임대료 상승 억제 등의 대책을 검토 중이다. 카드 수수료 인하로 자영업 몰락을 막겠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자영업이 무너지는데 건물주만 성할 리도 없다. 디지털혁명이 몰고 온 폐점 쓰나미, 선진국의 서너 배에 달하는 자영업자 비중, 빈약한 내수 규모. 설령 경기가 살아나도 자영업을 살리는 게 불가능한 구조다. 그러니 임시방편의 대책 만드느라 헛힘 쓰지 말자.

자영업자 열 중 일곱은 5년 내 망한다. 무작정 불길로 달려드는 그들의 무모성은 장사 아니면 당장의 생계를 해결할 방도가 없어서다. 그럼에도 자영업은 복지 부담을 줄여주는 마지막 완충지대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그들이 무너지면 한국경제도 버틸 재간이 없다. 기존 자영업을 충격 없이 구조조정 하고 중ㆍ장년층의 신규 진입을 막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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