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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통령이 탄핵심판정에서 국정농단 본질에 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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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통령이 탄핵심판정에서 국정농단 본질에 답해야

입력
2017.02.1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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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통령이 탄핵심판정에서 국정농단 본질에 답해야

추돌사고로 시비가 붙었다 치자. 언쟁은 “왜 반말이냐” “어디서 삿대질이냐”로 번져 옥신각신하게 마련이다. 사고 원인과 책임에 대한 시비는 저만치 멀어져 간다. 다혈질인 우리 운전자들의 과거 일상이고, 지금도 종종 목격하는 장면이다. 그러니 재빨리 경찰을 부르는 게 상책이다.

논리학에서는 이를 논점일탈이라 부른다. 주의전환 오류라고도 한다.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난 일이 논쟁의 중심에 선다는 데서 생긴 개념이다. 여기에는 의도성이 개입된다. 불리한 쪽이 논쟁의 중심을 일부러 옮긴다는 뜻이다. 반말, 삿대질을 걸어 감정싸움으로 이끄는 쪽은 대개 사고 원인 제공자라 논점일탈은 책임회피를 위한 전략적인 사고과정으로도 보인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후 탄핵소추까지 당한 박근혜 대통령이나 법률 대리인단이 최근 이러한 경향성을 보인다. 사실 3자가 보기에 상식 밖이라 해도 탄핵소추 사유와 범죄 혐의에 대해 전면적 부인에 나서는 것은 직접적 이해당사자의 재판 전략으로 그럴만하다. 언론의 의혹제기,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내용에 억울하다고 느끼는 점도 있을 터이다. 특히 뇌물 혐의와 관련해 반감이 진한 듯하다. 지난달 말 한 보수성향의 인터넷방송 인터뷰에서 “엮어도 너무 억지로 엮었다”는 대통령의 표현이 그렇다. 지난 3일 헌법재판소에 낸 대통령의 탄핵소추 의견서에서는 여러 탄핵소추 사유 가운데 대기업 모금 및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에 대해 “문화ㆍ체육분야의 발전이 중요하다”는 국가정책적 판단임을 강조한다. 대기업의 관심을 촉구했을 따름이라며 모금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있다. 반면 대기업들은 “청와대가 요구하는 데 돈을 내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기업의 팔목 비틀기’라고 청와대에 책임을 넘긴다. 특검은 모금 과정에 있었던 대가성 거래에 집중하고 있으니 유명한 고전영화 ‘라쇼몽’을 연출하듯 관련 3자의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헌재와 법원이 미르ㆍK스포츠 재단 문제에 대해 누구 손을 들어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무죄를 주장하는 대통령에 대해 ‘권력 갑질’을 답습한 정치적 책임을 비난할 수 있어도 대통령 자리와 개인의 명예가 걸린 문제에 헌법과 법률적 판단을 예단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법률대리인 측의 논점일탈은 그 의도성을 의심케 한다. 국정농단 기획설이나 최순실과 고영태간의 불륜이 발단이라는 주장이 그렇다. 음모론과 삼류소설로 격을 떨어뜨릴 정도로 한가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최순실 측근이었던 고영태가 국정농단을 폭로함으로써 K스포츠재단을 먹을 의도가 갖고 있었다 해도 탄핵사유가 희석되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본질에 대한 이러한 주의분산은 대통령과 법률대리인 측이 역사적 재판의 성격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허술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탄핵심판 주심인 강일원 헌재 재판관이 지난 9일 변론기일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 의견서 내용 중 미르ㆍK스포츠 재단과 관련해 “(대통령의 말처럼) 좋은 뜻으로 한 일이라면 안종범 청와대 수석이 왜 증거를 없애고 위증을 지시했느냐”고 물은 데 대해 대리인측은 답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법률계를 움직이는 한 원로 법조인은 사석에서 헌재 재판관 정족수에 매달리는 듯한 시간지연 등 대통령 대리인단 측의 대응과 전략과 관련해 “좀 창피하다”고 말했다. 세계인이 지켜보는 대통령 탄핵심판에 치열한 법리다툼을 통한 명승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주변국뿐만 아니라 아랍계 방송인 알자지라 방송마저 이 재판에 심심찮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탄핵심판이 종착점을 향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무죄를 확신하고 국정농단과 관련한 사실관계에 할 말이 많다면 변죽을 울리기보다 탄핵심판정에 직접 나와 국민의 의문과 본질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탄핵반대 세확산에 반전의 희망을 갖고 기대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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