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 예상보다 더디고 소비심리 위축에 선제 대응
"美 하반기 금리 인상 나서면 한국만 독자적 길 가기 어려워"
가계빚 폭증ㆍ자본유출 현실화 땐 "부적절한 처방" 책임론 여지도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은 부진의 늪에 빠진 수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 맞닥뜨린 내수라는 ‘이중 악재’의 대응책이다. 시장 예상을 깨고 금리를 내렸던 지난 3월에 이어 한은은 이번 역시 선제적 대응 차원의 금리 인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경기 상황을 감안한 적절한 조치라는 평가 한편으로, 추가 금리 인하가 현 상황에 맞는 처방이냐는 회의론이 따른다. 경제 당국이 적극적인 재정정책이나 구조개혁 없이 통화정책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더구나 미국이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에 나서면 한국 역시 시차를 두고라도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저금리를 동력 삼아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1,100조원대 가계부채의 부실화, 내외금리차 축소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이 현실화될 경우 한은 책임론이 불거질 공산이 크다.
메르스 때문? 메르스 핑계?
금통위는 이번 금리 인하 결정 요인으로 메르스 사태를 강조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달만 해도 수출은 부진하지만 내수가 긍정적인 회복세를 보여 우리가 예측한 성장경로가 유지될 것으로 봤다”며 “그러나 메르스로 인한 심리 위축으로 과도한 소비 자제가 일어나고 있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금통위는 수출에 대해서도 “예상보다 부진하다”고 지적했다. 올해 들어 수출 증가율(전기 대비)은 1월 -2.9%, 2월 -3.3%, 3월 -4.5%, 4월 -8.0%로 뒷걸음질의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이 총재는 다만 “수출 부진은 글로벌경기 회복 지연, 중국 성장세 둔화 등 구조적 요인이 크기 때문에 금리 인하가 수출에 주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메르스와 수출 부진을 강조하긴 했지만, 경기 상황이 한은의 당초 예상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금리 인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이날 “(4월에 발표한)경기전망에 비해 하방리스크 요인이 생긴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내달로 예정된 수정 경기전망 때 성장률 전망치(3.1%)를 낮추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한은 경기전망이 현실과 어긋나고 있다는 점은 미리 감지된 바다. 지난달 금통위 기자간담회(15일) 때만 해도 “경기 흐름이 4월에 발표한 전망과 부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던 이 총재의 판단은 메르스 사태가 일어나기 전인 지난달 26일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우리가 본 성장경로상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다 보니 시장 일각에선 “한은이 메르스를 핑계로 경기 전망 오류 해소에 나섰다”는 쓴 소리도 나오는 형편이다.
가계부채ㆍ자본유출 뇌관 터지나
시장에선 지난 8월을 시작으로 10개월 동안 네 차례 단행된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하 행진이 이번 달로 일단락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가계부채 문제가 상당히 심각해지고 있는데다 오는 9월로 예상되는 미국 금리 인상에도 대비해야 한다”며 “글로벌 시장이 미국 금리 인상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독자적 길을 가긴 어려운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금통위가 이날 이 총재 기자간담회 발언을 빌려 정부에 구조개혁 노력과 가계부채 관리를 요청하는 이례적 조치를 취한 것도 통화정책 여지가 한계에 달했다는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기준금리가 1%대 중반으로 떨어지면서 가뜩이나 위태로운 가계부채의 폭증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가 크다. 지난해 저금리 정책에 정부의 주택경기 부양책이 맞물리면서 가계부채는 4월 1,100조원을 넘어섰다. 20조원 규모의 안심전환대출 출시 등 가계부채 안정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변동금리 가계대출 비중이 60%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금리가 오름세로 전환할 경우 한계가구를 시작으로 가계 부실화가 확산될 수 있다. 이 총재는 이날 “미시적 대책은 물론, 가계부채 총량을 관리할 수 있는 가계부채 대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당국의 적극 대응을 주문했다.
초읽기에 들어간 미국 금리 인상이 현실화되면서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갈 것이란 우려도 높다. 신흥국은 이미 2013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출구전략 시사로 이른바 ‘긴축 발작(탠트럼)’으로 불리는 대규모 자금 유출을 겪은 바 있다. 정부와 한은은 우리 금융시장이 2013년 탠트럼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상황을 낙관하고 있지만, 유럽ㆍ미국 국채금리 상승 등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한편에선 이번 금리 인하를 두고 한은이 또다시 시장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시장의 동결 전망을 뒤집었던 지난 3월 금리 인하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한은이 금리를 내릴 것이란 신호를 충분히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9일 금융투자협회 설문조사 결과에선 채권시장 전문가의 70%가 금리 동결을 전망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관계부처가 메르스 발생에 따른 경제적 파장이 최소화되도록 모든 선제적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던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금통위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추측도 흘러 나온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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