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 고사장 앞에서 기다리기도
휴학 한 번 없이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2014년 지방 한 종합병원의 영양사로 취업한 김모(25ㆍ여)씨는 현재 ‘공무원 시험 준비생(공시생)이다. 영양사로는 정규직 기회가 거의 없어 불안정한 신분이 걱정돼 1년 만에 9급 공무원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지난해부터 공부를 시작한 그는 올해만 벌써 국가직 9급, 지방직 9급, 서울시 9급 등 3번의 필기시험을 봤다. 김씨는 26일 “집이 전남이라 서울시 시험을 보기 위해 전날 친구와 상경했다”며 “국가직이나 서울에서 일하는 것이 목표여서 지방직에 합격하더라도 다시 응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청년 실업난에 공무원 도전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25일 서울시내 147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치러진 2016년 서울시 7,9급 공무원 공채 필기시험에는 1,689명 모집에 8만9,631명이 응시해 53.1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당초 서류모집에서는 14만7,911명이 지원해 지난해(56.9 대 1)보다 치솟은 87.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공무원에 대한 청년층의 과도한 선호는 역시 직업 안정성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모(26ㆍ여)씨도 대학을 자퇴하고 5년째 9급 공무원에 도전하고 있다. 이씨는 “원래 꿈꿨던 과학 연구원은 학위를 계속 따야 하고 현실적으로 경제력과 시간도 뒷받침 되지 않았다”며 “공무원이 되면 급여가 많진 않겠지만 취미생활 등 삶을 즐기면서 직장생활을 오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합격은 점점 쉽지 않다. 무작정 붙고 보자는 생각에 동시다발적으로 시험을 치르는 공시족도 많아졌다. 25일 오후 서울 구로구의 시험장 앞에서 만난 수험생은 “18일에는 대구, 오늘은 서울에서 시험을 봤다”며 “8월에 7급 시험도 봐야 해 시험이 끝났지만 마음 편히 쉴 여유가 없다”며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공무원의 좁은 문을 뚫으려 악전고투하는 자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들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시험이 끝날 때까지 3시간 가까이 대입 수험생 자녀를 둔 것처럼 고사장 앞에서 서성이는 부모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공시생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고사장까지 나왔다는 임모(53ㆍ여)씨는 “영어는 자신 있지만 한자 때문에 걱정하던 모습이 마음에 걸려 힘을 주고 싶어 같이 왔다”며 “다들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 아우성인데 스스로 시험 준비하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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