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죽음을 자연에 맡겨두지 않고 인간 의지로 결정하는 제도는 나라마다 다양한 수준으로 시행되고 있다. 명칭들이 상당 부분 혼용되고 있으나, 주로 사망을 결정ㆍ시행하는 주체에 따라 개념이 나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는 안락사와 존엄사 정도다. 안락사(euthanasia)는 의사가 의도적으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칭한다. 안락사 중에서도 진정제 투여 등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죽음을 앞당기는 경우를 ‘적극적 안락사’, 이미 죽음의 위기에 달한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해 사망하게 하면 ‘소극적 안락사’라 부른다. ‘존엄사’라는 명칭도 소극적 안락사와 같은 의미로 널리 사용된다. 사실상 두 가지 갈래만 존재하는 셈인데, 아직 인위적인 죽음에 대해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만큼 세밀한 분류는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다.
반면 미국, 유럽 국가 등 해외에서는 국가별 다양한 제도를 운영 중인만큼 용어도 복잡하다.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는 적극적ㆍ소극적 안락사 외에 환자 동의 여부에 따라서도 자발적ㆍ비자발적 안락사로 나눈다. 환자 본인이 혼수 상태거나 뇌 손상으로 인해 의사를 밝힐 수 없을 경우가 비자발적 안락사에 해당한다.
안락사에 더해 서구권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는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 또는 ‘조력 죽음(assisted dying)’이다. 조력 자살은 죽음을 원하는 개인이 의사에게 약물 처방 또는 안내를 받은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조력 자살을 말기 불치 환자에 한해 허용하는 미국 오리건 등 5개주와 영국 등에서 구분을 위해 조력 죽음이라는 용어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다만 문자 그대로 ‘도움을 받아 죽는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만큼 더욱 포괄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최근 유럽 사회에서 최대 논쟁이 되는 사안은 이중에서도 조력 자살을 허용할 것인가 여부다. 조력 자살의 경우 불치병이나 말기 질환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생을 마치고 싶어하는 이의 죽음을 돕는 것인 만큼 논란이 격하다. 네덜란드는 조력 죽음을 허용, 조력 자살을 금지하는 대표적인 국가인데 영국 텔레그래프는 12일(현지시간) 최근 네덜란드 정부가 조력 자살 허용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에디트 스히퍼스 보건장관은 이와 관련 “신중한 고려 끝에 인생을 마무리했다고 여기는 이들이 존엄한 방식으로 인생을 끝낼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며 “주로 노인들 사이에서 삶을 스스로 마치려는 바람이 나오기 때문에 새로운 시스템은 이들에게 제한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허용 연령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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