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동안 몇 번씩이나 코피를 흘리던 초등학교 3학년 전예강(9)양은 2014년 1월 23일 오전 9시47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실려갔다. 혈액검사 결과 산소분압은 정상의 3분의 1, 산소포화도는 절반 정도의 저산소증이었다. 적혈구 용적률, 헤모글로빈 수치 등이 정상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심각한 빈혈, 혈소판이 정상의 10분의 1도 안 돼 출혈이 발생하면 지혈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의료진은 “당장 아이가 잘못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위중한 상태와는 달리 처치는 비상식적으로 진행됐다. 오전 10시41분 적혈구 수혈을 ‘응급’이 아닌 ‘일반’으로 처방했는데, 실제 수혈 시작까지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예강이가 심정지 상태였던 오후 2시55분 의료진은 응급으로 적혈구 수혈을 처방했는데, 이때는 수혈까지 불과 3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문제는 진료과 사이의 협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예강이 진료를 맡은 소아청소년과는 오전 11시12분 소아혈액종양과에, 낮 12시에 소아신경과에 협진을 의뢰했다. 두 과에서 전문의들의 소견이 오기 전, 소아신경과 2년차 전공의는 요추천자 검사를 시행하라고 처방했다. 산소를 공급하고 수혈을 하면서 환자 상태를 안정시키는 게 우선인데도 허리에 바늘을 꽂아 척수액을 채취하는 매우 고통스러운 검사를 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요추천자 검사를 아무도 막지 않았다는 점이다. 적혈구 수혈은 효과를 보기까지 보통 100분이 걸리지만 수혈 직후 요추천자를 시작했다. 전공의 두 명은 의식이 거의 없는 예강이가 마취를 하지 않아 아프다며 저항하자 오른쪽 손발을 묶었다. 간호사까지 5명이 손과 무릎으로 누르면서 예강이는 39분간 다섯 번이나 지옥 같은 요추천자를 받아야 했다. 예강이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의료진은 9분 후에야 검사를 중단했다. 이미 예강이의 심장은 뛰지 않았고,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결국 예강이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직접 사인은 저혈량성 쇼크, 상세불명의 출혈’이라고 사망진단서에 적혔다.
예강이가 사망에 이르자 병원과 의료진의 이해할 수 없는 작업이 시작됐다. 당일 낮 12시 11분 수혈을 시작했다는 기록을 허위로 적어 넣은 것이다. 예강이 부모는 “요추천자 검사를 시행하기 1시간 36분 전에 수혈을 했으니 환자의 상태를 안정시키려는 노력을 했다는 증거를 남기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병원 관계자는 사건이 보도되자 “의료진이 ‘예강이 보호자를 아동학대로 고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한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부모가 예강이의 상태가 악화할 때까지 방치했거나 폭행을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내용을 전해들은 예강이 부모는 분노하면서 응급실 내원 당시 예강이의 상태를 정상이라고 허위 기록한 인턴 김모씨, 수혈 시간을 허위로 의료기록에 적은 간호사 유모씨를 고소했다. 이전까지는 민사소송만 제기한 상태였다. 이 민사소송도 의료감정으로 사망 원인을 알기 위해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낸 조정신청을 병원이 거부하면서 선택한 차선책이었다.
예강이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국회는 2016년 5월 병원이 거부해도 의료분쟁 조정절차를 자동 개시하도록 의료분쟁조정법을 개정했다. 일명 ‘예강이법’, ‘신해철법’이다. 올해 2월에는 진료기록의 원본과 수정본을 모두 의무 보존, 열람, 교부하도록 의료법도 개정했다.
그러나 정작 예강이 부모의 주장은 대부분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족이 병원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한 1심 민사재판을 맡은 서울서부지법은 지난해 10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올해 1월 의료진의 허위기재 1심 형사소송을 맡은 같은 법원은 인턴에게만 100만원 벌금형을 내렸다. 간호사의 진료기록 허위 기재 행위는 고의가 아닌 실수라는 이유로 무죄 판결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4일 서울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의료인들이 전문가적 양심으로 예강이 응급실 사망사건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며 관련 의무기록과 진료 과정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예강이 사건 홈페이지(http://iamyekang.tistory.com)에 공개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예강이 엄마 최윤주씨는 “저희는 아직 예강이가 떠난 이유도 알지 못한다”면서 “다시 법과 판사에게 기대야 하지만 2심에서는 공정한 판결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예강양 진단부터 사망까지 과정>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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