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지식 아닌 출신교 간판 중시...86% "대학 나와야 사람 대접"
83% "결혼도 학력 좋아야 잘해"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 등...정부 대책들은 반짝 효과에 그쳐
국민 10명 중 8명은 “학벌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력은 좋은 일자리, 높은 임금, 행복한 결혼생활 등 인생의 주요 변곡점마다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식됐다. 반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5%에 그쳤다. 한국사회가 여전히 학벌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여러 정부가 내놓은 학력사회 해소방안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일보와 한국리서치가 지난달 20~24일 서울ㆍ부산ㆍ대구ㆍ광주ㆍ대전 등 5개 대도시에 거주하는 20~59세 성인남녀 1,000명(남성 501명ㆍ여성 4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교육 정도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고 응답한 이가 76.2%였다. 이번 여론조사는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다.
교육 정도(학력)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절반 이상인 58.9%가 ‘출신학교’를 꼽았고, ‘우리 사회에서 사람대접 받으려면 대학을 나와야 한다’(85.7%)거나 ‘미래를 위해서라면 편입ㆍ재수를 해서라도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낫다’(71.1%)고 생각한 사람도 다수였다.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ㆍ능력을 나타내는 ‘학력(學力)’보다 출신학교 간판인 ‘학력(學歷)’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명문대 입학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취업부터 결혼까지 모든 게 용이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는 학벌과 상관없는 열린 채용을 확대하는 추세지만 구직자들은 정작 입사 후 ‘학력차별 없는 기회의 균등과 공정한 결과’가 담보되지 않을 것이라며 불안해 한다. 박거용 대학교육연구소장(상명대 교수)은 “박근혜 정부 들어 성균관대 출신의 정부 고위직 진출이 많아지니 ‘태평성대’, 고려대가 잘 나갔던 이명박 정부 때는 ‘학수고대’ 같은 우스갯소리가 교수 사회에서 회자됐다”며 “학력과 인맥이 여전히 다방면에 작용한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다수의 응답자는 ‘학벌이 입사에 영향을 미친다’(92.9%), ‘학력이 좋을수록 좋은 직업을 구하기 쉽다’(88.1%), ‘학력이 좋아야 수입도 많다’(79%)고 여겼다. 결혼시장에서도 학벌 높은 사람이 유리한 것으로 인식돼 ‘학벌이 결혼에 영향을 미친다’(82.8%)는 응답이 많았고, ‘학력이 좋을수록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기 쉽다’(82.8%)고 답한 이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그렇지 않다(64.4%)고 말한 이들이 다수였다. 능력과 상관없이 좋은 대학 간판을 지니고 있어야 ‘인생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사회 구성원이 필요 이상으로 학력에 집착하는 학력주의는 여러 병폐를 낳는다. 과도한 입시경쟁, 사교육 시장 확대, 고학력 실업자 양산, 창의성 실종 등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고졸 취업 활성화 등 정부가 학벌사회 해소를 위해 여러 정책을 내놨지만 잠시 반짝했을 뿐 장기적인 효과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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