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지
기자

등록 : 2018.06.03 14:00

[토끼랑 산다] 토끼가 자기 똥을 먹는다고?

<8>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살펴보는 ‘토끼’ 습성

등록 : 2018.06.03 14:00

토끼 랄라가 뒷발로 얼굴을 털고 있다. 이순지 기자

나와 토끼 랄라가 사는 집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이다.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공원에선 밤 낮 가리지 않고 산책 나온 개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가끔 예의를 모르는 반려인들이 치우지 않은 낯선 개의 똥이 발견될 때는 질색할 수 밖에 없다. 랄라를 키우기 전엔 동물의 배설물은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 먼 더러운 존재에 불과했다.

그런데 나의 사랑스러운 토끼 랄라는 자기 똥을 먹는다. ‘똥을 먹는다고?’ 선뜻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토끼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다. 토끼 똥은 보통 동글동글하고 황금빛을 띤다. 한약방에서 주는 환약과 비슷하다. 그런데 랄라를 집에 데려온 지 한 달쯤 됐을 때 포도송이 모양을 한 낯선 똥을 발견했다. 내가 알고 있던 황금빛 동그란 똥과는 확연히 달랐다. 색이 시커멓고 물기도 있었다. 살짝 손을 대봤더니 점성도 느껴졌다.

혹시 랄라가 아픈 게 아닌지 걱정돼 득달같이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랄라가 이상한 똥을 쌌어요. 색은 검은색인데 끈적한 것 같기도 해요.” 의사 선생님은 웃으며 “식변(食便)이라고 불리는 똥인데 토끼들이 먹어야 하는 영양제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양제라는 말에 안심하긴 했지만 귀여운 내 토끼가 똥을 먹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랄라가 먹는 ‘식변’이 도대체 뭔가요?

건강한 토끼가 싸는 대변(왼쪽)과 식변(오른쪽). Mad Hatter Rabbits 블로그 캡처

토끼는 보통 두 종류의 똥을 싼다. 첫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똥으로 딱딱하고 동글동글한 모양을 하고 있다. 두 번째가 식변이라고 불리는 똥이다. 이 똥을 토끼가 먹는다. 보통 싸자마자 바로 먹어버리기 때문에 주인이 식변을 눈으로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식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랄라가 모든 것이 미숙한 어린 토끼였기 때문이다. 어린 토끼들은 식변을 잘 먹지 못하고 땅에 흘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혹시 식변을 발견하더라도 놀라지 말자. 식변은 보통 똥과 달리 토끼에게 꼭 필요한 ‘영양분’을 가진 소중한 존재다.

잘게 씹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무줄기 같은 경우에는 토끼 위에서 소화된다. 이후 소장에서 흡수되고 대장을 따라 내려간다. 섬유소 같이 질긴 것들은 위에서 소화되지 않고 맹장에서 발효된 후 대장을 따라 그대로 내려간다고 한다. 식변은 맹장변이라고도 불리는 데, 맹장에서 4시간 이상 발효된 똥을 말한다. 단백질 등 귀중한 영양분이 포함돼 있어 토끼 건강을 위해 꼭 먹어야 할 영양제와 같다. 만약 더럽다는 이유로 토끼에게 식변을 못 먹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양 부족으로 토끼가 아플지도 모른다.

랄라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식변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개를 엉덩이 쪽으로 깊숙이 넣고 무언가를 찾을 때가 있다. 잠시 후 고개를 들고 입을 오물오물한다. 입안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식변을 ‘냠냠’ 먹고 있는 것이다. 식변을 먹을 때 랄라는 무표정하다. 입만 위아래로 오물거린다. 랄라에게 식변은 일상의 한 부분이다.

토끼 ‘똥’으로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

식변을 먹고 있는 토끼의 입. 이순지 기자

토끼는 아픔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반려인이 세심하게 살펴야 토끼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토끼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배설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건강한 토끼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황금색을 띤 동글동글한 모양의 똥을 눈다. 만약 황금색이 아니라면 토끼 식습관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티모시 등 건초는 토끼 주식인데 만약 이 건초 대신 과일이나 말리지 않은 풀 등을 많이 먹으면 황금색을 띠지 않는 경우가 있다. 똥이 황금색이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아프다고 볼 순 없지만 내 토끼의 건강을 위해서는 섬유질과 영양이 풍부한 건초를 주식으로 먹게 하는 것이 좋다.

스위스 토끼 전문 사이트 ‘메디 래빗’에 따르면 만약 똥이 동글동글하지 않다면 건강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타원형이라면 탈수가 의심된다. 또 식이섬유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평소보다 작은 크기를 가진 똥을 싸는 것도 마찬가지다.

눈여겨봐야 할 것이 또 있다. 긴 털이 똥과 함께 뭉쳐 나오는 경우다. 토끼도 털 갈이를 하고 자신의 몸을 혀로 단장하는 행동을 한다. 몸을 혀로 단장하다 털이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 털이 그대로 똥과 함께 나오는 것이다. 토끼는 구토를 할 수 없는 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똥이 보인다면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유산균이 함유된 영양제를 먹이거나 파인애플 등을 먹이면 도움이 된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경우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장에 있던 기생충이 설사와 함께 나오는 경우다. 드물게 설사와 함께 기생충이 육안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때 토끼는 심한 복통을 겪는다. 병원에 가서 바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냥 넘긴다면 토끼는 혼자 극심한 고통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수많은 토끼 똥!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토끼가 좋아하는 풀을 찾아 통을 뒤지고 있다. 이순지 기자

토끼는 먹는 족족 배출한다. 식변의 경우 모두 먹어버려서 눈으로 보기 쉽지 않지만 다른 똥들은 그렇지 않다. 랄라의 경우 성인 기준 두 주먹이 넘는 똥을 매일 생산해낸다. 나의 경우에는 이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버리지만, 외국에서는 식물 비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미국 샌디에이고 토끼 협회에 따르면 토끼 비료는 영양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원예사들에게 인기가 많다. 다른 비료에 비해 냄새도 적다고 한다. 토끼 똥을 식물 키우기에 사용하면 농작물이 건강하게 자라는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토끼 똥을 비료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블루베리를 키우는 사람들이 토끼 똥 비료 활용법에 대해 올린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토끼를 키우는 집의 경우 블루베리 화분에 이 똥을 으깨서 뿌린다고 한다.

사실 랄라 화장실을 치울 때마다 한숨을 쉬곤 했었다. 똥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식물을 쑥쑥 자라게 하는 힘을 가진 착한 배설물이었다. 앞으로 랄라 화장실을 보면서 인상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죽어가던 식물에게 선물로 토끼 똥을 줘야겠다. 항상 누워 쉬기만 한다고 생각했던 랄라가 새삼 귀여워진다. “기특한 녀석. 귀엽기만 한 줄 알았더니… 똥도 쓸모가 있다니!”

좁은 계단 위에 올라가서 쉬고 있는 토끼. 이순지 기자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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