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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우산 혁명'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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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우산 혁명' 현장을 가다

입력
2014.09.3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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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등 대거 가세 절정 예고 "렁춘잉 행정장관 퇴진" 거듭 요구

홍콩 행정장관의 민주적 선출을 지지하는 한 시위대원이 30일 민주화 운동 응원 글로 도배된 2층버스를 지키고 있다. 홍콩=AFP연합뉴스
홍콩 행정장관의 민주적 선출을 지지하는 한 시위대원이 30일 민주화 운동 응원 글로 도배된 2층버스를 지키고 있다. 홍콩=AFP연합뉴스

‘민주주의의 해방구’.

30일 홍콩 지하철 센트럴(中環) 역에서 밖으로 나와 학생들이 점령하고 있는 거리를 본 순간 떠 오른 생각이다. 명품 거리 한 가운데를 막고 있는 철제 바리케이드 위엔 우산들이 펼쳐져 있었다. 우산은 경찰의 최루탄 공격과 한낮의 뜨거운 땡볕을 막을 수 있어 이번 거리 점거 시위의 상징물로 부상했다.

맨 처음 만난 건 홍콩시립대 학생들이었다. 언제 경찰이 쳐 들어올지 몰라 맨 앞에 나와 망을 보고 있다는 데이비드 차이(21)는 “홍콩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지 않는 베이징의 중앙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밤을 시위대와 꼬박 샌 뒤 아침에 집으로 돌아가 쉬다 다시 나왔다고 했다. 이번 시위로 과연 중앙 정부의 정책이 바뀔 것이라고 믿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옆에 있던 필립 천(21)은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희망도 꿈꿀 수 없을 것”이라며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검은 티셔츠에 노란 리본을 단 학생들이 거리에 줄 지어 앉아 있었다. ‘홍콩 파이팅’ ‘쟁취하자 진정한 직선제’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은 사퇴하라’ ‘더 나은 홍콩을 위하여’ 등의 구호가 곳곳에 보였다. 걷기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어디선가 “물 필요하신 분 계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보라색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여고생 10여명이 생수 박스를 들고 시위대를 지나며 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이날 홍콩의 낮 최고 기온은 32도. 밤에도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여학생들은 각자 용돈을 모아 물을 사왔다고 했다. 생수뿐 아니라 물수건과 노란 리본 등을 나눠주는 이들도 많았다.

시위대는 학생들이 다수였지만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한다는 장빙화(張炳華ㆍ57)는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뒤 부패를 비롯해 중국의 안 좋은 것들이 홍콩으로 너무 많이 들어와 홍콩인의 불만이 크다”라며 “빈인빅 부익부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삶의 질은 점점 추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이공대를 다닌다는 크리스틴 황(18)은 “중앙 정부가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후보를 친중국 애국 인사로 제한한 것은 진정한 직선제라고 할 수 없다”며 “700만 홍콩인의 의견을 대변할 후보를 세울 수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켈리 양(19)도 “민주가 없다면 민생도 있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도로를 점거한 학생들을 뚫고 가자 까만 아스팔트 위에 분필로 길게 쓴 격문이 눈길을 끌었다. 한 학생은 ‘우린 손에 아무 것도 든 게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라는 입간판을 두 손으로 번쩍 든 채 행진했다. 한 학생은 확성기로 “자신이 앉았던 곳을 떠날 땐 쓰레기를 남기지 맙시다”라고 외치느라 목이 쉬었다. 거리에는 버려진 생수병 하나 없이 말끔했다.

이날 학생들이 점령한 홍콩의 중심가는 센트럴역에서 애드미럴티(金鐘)역을 지나 완차이(灣仔)역까지 약 2㎞에 달했다. 밤 7시30분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서 잠시 대열이 흩어지기도 했지만 비가 그치면서 다시 거리는 시위 인파로 꽉 찼다. 어림잡아 수십만 명은 될 규모였다.

홍콩 당국은 꿈쩍하지 않고 있다. 렁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불법 행동이 중앙 정부의 결정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며 “시민단체들은 시위가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자체 해산할 것이라고 약속해온 온 만큼 지금 당장 시위를 멈추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센트럴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 공동발기인 중 한 명인 찬킨만(陣健民) 전 중문대 교수는 “통제 불능인 것은 평화적인 시위를 최루탄으로 진압하려는 정부”라고 반박했다.

미국과 영국 등은 시위에 지지를 표명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29일 “홍콩 주민들의 자유와 평화로운 집회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영국은 대치를 끝내기 위한 건설적인 대화를 촉구했다. 마잉주 대만 총통도 “홍콩인들의 시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대만에선 이날 홍콩 시위 지지 시위까지 벌어졌다. 중국 중앙 정부는 홍콩 사태가 대륙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홍콩 시위’ 등의 단어는 검색이 차단됐고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 올라온 시위 관련 글도 지워졌다. 인스타그램 등을 통한 사진 확산 등도 통제했다.

이번 시위는 1일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국경절 연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취임 이후 최대 정치 위기를 맞았다. 일국양제(一國兩制)도 시험대에 올랐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운동 이후 중국 지도부에 닥친 가장 큰 정치적 도전이다.

홍콩=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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