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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등록 : 2017.02.07 14:05
수정 : 2017.02.07 19:19

[이정모 칼럼] 울산 시민 여러분!

등록 : 2017.02.07 14:05
수정 : 2017.02.07 19:19

새벽 풍경은 여느 작은 어촌 마을과 같습니다. 채 동이 트기도 전에 장화를 신고 골목을 나섭니다.

이웃들과 정겹게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배에 시동을 겁니다. 십여 척의 배가 함께 출항하죠. 오늘의 노동으로 가족들이 생계를 이어갈 겁니다. 매년 9월부터 3월까지가 대목입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괜찮은 수입을 올릴 것 같습니다. 이미 주문이 들어와 있거든요. 하늘은 맑고 파도는 높지 않습니다. 평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참 좋은 날입니다.

이곳은 일본 와카야마 현의 다이지 초라고 하는 작은 어촌입니다. 인구가 3,500명 정도죠.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사냥’ 덕분입니다.

사냥은 제법 먼 곳에서 시작합니다. 부두에서 30㎞나 떨어진 바다로 나갑니다. 작은 배로 30㎞를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사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한쪽에 구멍이 있으면 안 되죠. 사냥꾼 전체가 서로를 신뢰하고 배려하면서 속도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호흡이 중요하죠. 전통적인 사냥이니 당연히 훈련이 잘 되어 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몸으로 배웠고 오랜 세월 동안 손발을 맞추었거든요.

저 멀리 사냥감이 보입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습니다. 사냥감 무리가 작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제법 규모가 커야 합니다. 우두머리의 신호가 왔습니다. 배들은 일렬로 늘어서서 달립니다. 사냥감에 바짝 다가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몰이꾼이거든요. 커다란 엔진 소리가 귀찮은 사냥감들은 그 소리에서 멀어지려고 합니다. 요즘은 바다 그 어느 곳도 조용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배가 많거든요. 몰이꾼들은 기다란 쇠막대를 바다에 들이밀고는 윗동을 망치로 세게 때려댑니다. 사냥감이 견디기 힘들어 하는 소리입니다. 소음 때문에 서로 신호를 주고받지도 못합니다. 사냥감 안에서 리더십이 무너집니다. 사냥감은 무조건 도망만 갑니다. 그런데 그들이 도망치는 곳은 몰이꾼이 원래 원하는 방향입니다.

겨울 산에서 토끼 몰이하는 장면과 비슷합니다. 쫓기는 토끼도 사냥꾼들이 두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산인데…, 산은 내가 제일 잘 아는데…”라고 하면서 큰 걱정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곳곳에 파둔 토끼굴도 있고요. 그런데 사냥꾼은 뒤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앞에서도 기다리고 있지요. 결국 덫에 걸리든지 사냥개에게 잡히고 맙니다.

다이지 어민들에게 쫓긴 사냥감들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뒤에서 아무리 쫓아와도 걱정 없어. 이렇게 넓은 바다에서 자기네들이 어떻게 할 거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착각이었습니다. 한없이 넓을 것 같은 바다에도 끝이 있습니다. 시끄러운 소음을 내고 쫓아오는 십여 척의 배에 쫓겨온 그들 앞에는 육지가 가로막혀 있습니다. 앞만 그런 게 아닙니다. 양 옆도 육지입니다. 삼면이 육지인 작은 만(灣) 안에 갇힌 것입니다. 이젠 뒤로 돌아나갈 수도 없습니다. 일렬로 늘어선 배들이 이미 그물로 그 길을 막아버렸거든요.

몰이꾼의 역할은 이제 거의 다 했습니다. 이젠 포수와 사냥개가 자기 역할을 할 때입니다. 총을 쏘지는 않으니 포수는 아닙니다. 칼잡이입니다. 더 무섭습니다. 그들은 사냥감의 꼬리를 들어 올리고는 목에 칼을 찔러 넣습니다. 예전에는 일이 쉽고 빨랐습니다. 한 놈의 목에 칼을 집어넣고 이어서 다른 놈의 목에 칼을 찔러 넣으면 되었거든요. 그런데 인터넷이 문제였습니다. 작은 만이 피로 붉게 물든 사진이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비난이 쏟아졌죠. 그렇다고 해서 주민 생계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통적 사냥법을 포기할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래서 꾀를 냈습니다. 코르크 마개로 찌른 부위를 얼른 막습니다. 혈관에서 빠져 나온 피는 몸 안에 쌓이겠죠. 고기는 비싼 값으로 판매됩니다.

바다에 사는 생물이 마치 토끼처럼 사냥을 당한다는 게 어처구니없기도 합니다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사냥감은 아가미가 달려 있는 어류가 아니라 물 위로 머리를 내놓고 숨을 쉬어야만 하는 포유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돌고래입니다. 다이지 마을 주민들은 전통적 사냥법으로 돌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전통적 사냥법이라고 해서 마구잡이로 돌고래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와카야마 현으로부터 매년 사냥할 수 있는 포획량을 배정받습니다. 다이지 마을이 받은 쿼터(quota)는 매년 대략 2,000마리 정도입니다.

쿼터 대부분은 일본 사람들이 먹습니다. 그들이 고래를 먹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얼마든지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비난하면서 미안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다이지 마을의 돌고래 사냥 때문에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다이지 마을 사람들의 사냥법이 조금 달랐습니다. 다짜고짜 목에 칼을 찔러 넣는 게 아니라 일단 며칠 굶깁니다. 이제 사육사들이 기진맥진한 돌고래 무리에 들어가서 새끼를 고릅니다 어미와 새끼는 헤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사람을 당해내지는 못합니다. 새끼 몇 마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습니다. 평생 좁은 수족관에서 살아야 합니다. 쇼를 하면서 말이죠. 냉동 고등어나 받아먹으면서 말입니다.

야생 돌고래에서 수족관 돌고래로 순식간에 운명이 바뀐 새끼가 팔려가는 나라는 러시아, 중국, 우크라이나 그리고 한국입니다. 지난 1월 24일 울산남구청은 동물 쇼를 위해 돌고래를 수입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제돌이 같은 남방큰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노력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쇼를 하겠다고 다이지 마을의 돌고래를 수입하고 있는 판입니다. 울산이 돌고래 쇼라도 해야 겨우 먹고 사는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울산에서 죽어나간 돌고래가 이미 한두 마리가 아니잖아요. 울산 시민 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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