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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윤이상 생가 터 없애려는 통영시

입력
2017.07.0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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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베를린에 있는 통영 출신의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선생 묘지에 참배했다. 이날 묘지 앞에는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와 함께 대한민국 공군기를 타고 온, 통영의 동백나무 한 그루도 심어졌다. 고향에서 온 동백나무 한 그루가 그의 영혼에 큰 위로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고향 통영에서는 김동진 통영시장 주도의 ‘윤이상 흔적 지우기’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가 나고 자란 생가 터는 도로 공사로 매몰 위기에 처했고, 그를 기리는 공원은 ‘윤이상’이란 이름을 달지 못하고 도천 테마파크가 됐다. 더욱이 그의 명성을 팔아 건립한 520억원짜리 통영국제음악당에는 윤이상 이름을 딴 연주홀 하나 없다. 박근혜 정권 시절 윤이상평화재단은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윤이상 콩쿠르에 대한 국가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탄생 100주년인 올해 세계 각지에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김 시장은 여전히 윤이상 지우기에 몰두해 있다. 그가 살아 생전 민주화 운동을 했고, 이미 고문 조작사건으로 판결이 난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는 이유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윤이상은 생존 당시 ‘현존하는 유럽 5대 작곡가’의 하나로 꼽혔고, 뉴욕 브루클린 음악원 교수들이 선정한 ‘사상 최고의 음악가 44인’의 하나이기도 했다. 44인 중 20세기 작곡가라고는 윤이상과 스트라빈스키 등 4인뿐이었으니, 그의 음악 세계에 대한 국제적 평가가 어떠했는가를 새삼 일깨우고도 남는다. 그의 생가 터가 보존돼야 할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겠는가.

필자는 지난 2014년부터 윤이상 생가 터 지키기 운동을 해왔다. 그 결과 공사는 잠정 중단됐고, 6ㆍ4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영시에서도 우회도로를 내서 보존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지만, 재선이 확정되자마자 김 시장은 약속을 뒤집고 도로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나셨다.

그의 생가 터는 작년 5월, 같은 도로공사 대상인 국가무형문화재 99호 소반장 추용호 장인의 전통공방 강제집행 때 다시 사라질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공방 지키기 운동이 확산되면서 공사가 일시 중단된 덕에 보존됐다. 필자가 작년 한해 공방 지키기에 매진했던 이유의 하나도 공방을 지키면 그와 함께 윤이상 생가 터도 지켜질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공방에서 쫓겨나 벌써 1년 넘게 농성중인 장인의 천막에는 야인시절 문재인 대통령도 지지 방문, “통영의 소반, 통영의 전통문화예술이 대한민국의 전통문화예술입니다. 우리의 가치 함께 지키겠습니다. 2016.9.9 문재인” 이란 글까지 남겼다. 그 천막 자리가 바로 윤이상 생가 터다. 그 사이 문화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문화재청은 추장인의 공방을 문화재로 등록 신청하도록 공문을 보내 권고하기도 했지만, 김 시장은 여전히 도로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옹고집을 버리지 않고 있다.

동백나무를 심은 김정숙 여사는 "윤이상 선생이 생전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 오셨는데 정작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참으로 따뜻한 마음가짐이다. 그러나 이런 따뜻한 마음의 대칭점에 서 있는 김 시장은 굳이 윤이상 생가 터와 공방을 없애고 직선도로를 내겠다고 한다.

이것은 명백한 윤이상 흔적지우기가 아닐 수 없다. 그를 팔아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까지 된 통영인 만큼 통영시민도 더 이상 김 시장이 윤이상 선생을 모독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충남의 경우 월남 이상재 생가 터를 충남도 기념물84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그런 좋은 선례에 따라 추 장인의 전통공방은 물론이고, 윤이상 선생 생가 터 역시 문화재로 보호해 마땅하다.

강제윤 시인ㆍ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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