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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등록 : 2017.07.10 16:06
수정 : 2017.07.10 16:07

[김원중의 고전산책] 서두르지 말고 기본에 충실해야

등록 : 2017.07.10 16:06
수정 : 2017.07.10 16:07

<논어> 첫 편이 ‘학이(學而)’이고 그 뒤에 ‘위정(爲政)’ 편이 나온다는 것은 공자가 학문과 정치를 분리하려고 한 게 아니라, 지식인도 정치를 통해 국가를 위해 큰 뜻을 펼치게 하려던 뜻을 엿보게 한다.

공자는 무엇보다도 덕정(德政), 즉 덕에 의한 정치를 맨 우위에 두어야만 모든 별들이 북극성을 떠받들게 되는 것처럼 순탄한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는데, 그 기본적 방향을 이렇게 설정했다. “정령(政令)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은)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잘못을) 바로잡게 된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논어>’위정’편)

정치적 명령이나 형벌만큼 손쉬운 것은 없다. 일사불란하면서도 신속하게 승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 백성들은 법망을 빠져나갈(免) 궁리만 하고 끝내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무치(無恥)’의 상황으로 들어갈 수 있기에, 공자는 백성들 스스로 규정을 준수하고 법도와 규범을 지키지 않으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도덕적 경지로 나아가게 하고, 스스로 바로잡는(‘格’) 방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논지다.

이런 관점의 형성은 공자가 노(魯)나라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뒤 정치에 뜻을 두고 천하를 주유하면서 각 제후국들에 대해 형성된 현실인식에 바탕하고 있다. 국력 신장과 번영은 눈에 보이지 않은 덕정에 바탕을 두었을 때, 그 가시적 성과가 드러날 것이란 확신 말이다. 물론 패도(覇道)가 주류였던 당대의 정치의 흐름과 다른 덕정을 주창한 공자를 따르는 제후들은 드물었다. 그러나 공자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

공자는 노나라 애공(哀公)이 백성들을 복종시키는 방법을 묻었을 때도 그들을 근본적으로 복속시킬 수 있는 해법을 이렇게 내놓았다. “정직한 사람을 천거하여 비뚤어진 사람들 위에 두면 백성들은 복종하겠지만, 비뚤어진 사람을 뽑아 정직한 사람 위에 두면 백성들은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위정’)

여기서 곧은 사람을 윗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말의 이면에 감추어진 공자의 속내는 순(舜)임금 때의 고요(皐陶)와 탕(湯)임금 때의 이윤(伊尹)과 같은 인물이었다. 덕정의 기본은 어떤 인물을 발탁하느냐에 달려 있고, 그런 인물의 발탁을 통해 군주의 역량이 백성들에게 전달되어 그들을 복종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위정자의 도덕성과 솔선수범이 전제되지 않는 정치력의 발휘는 곤란하다는 게 공자의 시각이다. 위(衛) 나라를 방문한 공자에게, 만일 위 나라 군주가 정치를 맡긴다면 우선순위를 무엇에 두겠느냐는 자로의 질문에, ‘정명(正名)’, 즉 명분을 바로잡겠다는 말로 간결하게 답했다. 너무 간단해서 자로가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자, 공자는 “군자는 자신의 말에 대해 대충 행하는 것이 없도록 할 뿐(君子於其言 無所苟已矣)”(‘자로’편)이라며 말과 행동의 일치를 강조했으니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다우면 된다는 것이다. 공자의 이런 소신 덕분에 위 나라에서 영공(靈公) 때 2년, 출공(出公) 때 3년 간 벼슬을 하기도 했다.

자기 관리에 엄격했던 공자는 “그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지만, 그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자로’)고, 위정자 스스로의 수신이 선행돼야 그의 명령에 권위가 주어지며, 사람들이 따르게끔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했다.

“만약 나를 등용해주는 자가 있다면 1년이면 웬만큼 괜찮아질 것이고 3년이면 성과가 있을 것이다(苟有用我者 期月而已可也 三年有成).”(‘자로’편)라고 할 정도로 정치역량을 자부했던 공자는 섭공(葉公)이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도 간단히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은 찾아오는 것(近者悅 遠者來.)”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감동의 정치를 통해 나라 안팎에서 기쁨을 주는 정치를 주문한 것이다. 무력으로 이웃나라를 제압하고 강제적인 제도로 백성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닌 편안한 정치를 통해 국력은 자연스럽게 신장된다는 뜻이다.

공자는 빠른 성과주의도 경계했다. 무언가 보여주려는 행태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의 제자 자하(子夏)가 거보(莒父)의 읍재가 되어 성과를 빨리 보려고 안달을 하자, 공자는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을 보려고 하지 말아라. 서두르면 도달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보려고 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자로’편). 일을 빨리 추진하려고 하다 보니 순서가 뒤바뀌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 급급하다 보니 오히려 성과는 멀찌감치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정치란 덕정에 바탕을 두고, 기본에 충실하라는 공자의 시각이 유독 요즘 들어 돋보이는 이유는 무얼까.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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