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 20대 여성 살인 사건은 피의자 김모(34)씨가 사건 현장에서 기다리며 여성을 노린 계획 범죄로 드러났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를 통한 김씨의 심리분석 결과 ‘피해망상에 의한 범행’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김씨가 17일 오전 1시쯤 서초구의 한 주점 남녀공용 화장실 남성용 칸 좌변기 위에 앉아 범행 대상을 물색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1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당시 여성용 칸에 피해자 A(23ㆍ여)씨가 들어온 뒤 곧이어 화장실에 온 한 남성이 용변을 보고 나간 직후 세면대 쪽으로 나가 기다렸다. 이어 볼일을 보고 나온 A씨에게 수 차례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은 “김씨가 여성을 노렸다고 진술했다”고 확인했다.
경찰은 그러나 김씨가 심각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어 ‘여성 혐오’를 범행 동기로 단정짓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당초 김씨가 “여성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참을 수 없었다”고 진술한 점으로 미뤄 여성 혐오가 살인 범죄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지만, 경찰은 정신질환 범행 쪽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 이날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형사 등 프로파일러 3명이 김씨를 1차 면담한 결과 그는 여성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구체적 사례를 진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는 중학생 때부터 비공격적 분열증세를 앓아 2008년 정신분열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었으나 최근 약을 복용하지 않아 증세가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경찰은 김씨가 올해 1월까지 정신분열증으로 4차례에 걸쳐 입원 치료를 받은 진단서와 진료 기록을 확보했다. 김씨는 지난 1월 퇴원 당시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재발할 수 있다”는 진단에도 불구, 3월 말 아버지와의 불화로 가출한 뒤 약물 치료를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가출 이후 강남역 일대 건물 계단이나 화장실에서 쪽잠을 자며 생활했고, 사건 현장 1층의 식당에서 열흘 정도 근무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김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한 뒤 “범죄가 중대하고 도망가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씨는 지법 출석 과정에서 범행 동기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경찰은 20일 심리면담을 추가로 진행해 김씨의 정확한 범행 동기를 파악할 계획이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