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들 공약으로 관심 집중
정부 통계, 고용부ㆍ한은 등 산재
신뢰성 있는 임금지표 없어
재계ㆍ노동계 아전인수 해석으로
정책 입안 과정 갈등 재연 우려
유력 대선 후보들이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론’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지만, 정작 우리 국민의 정확한 ‘소득’을 파악할 통계가 지나치게 중구난방이어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의 기본인 소득(임금) 관련 통계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4일 정치권과 관계 부처 등에 따르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 등은 소득주도 성장론을 자신의 성장담론으로 내세우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이란 쉽게 말해 가계(근로자)의 가처분 소득부터 높여 내수기반을 넓히자는 주장이다. 기존 성장담론이 대부분 ‘기업활동 활성화→기업 이윤 증가→근로자 임금 상승’의 흐름을 가지는 데 비해, 소득 주도 성장은 ‘근로자 임금 상승→소비활동 증가→기업활동 활성화’의 흐름에 주목한다는 게 차이점이다.
이들이 말하는 소득의 중심은 근로자의 ‘임금’이다. 인구의 40%에 달하는 급여소득자 임금을 끌어올려야 가계부채, 내수 부진, 저성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여전히 정확한 소득을 측정할 공신력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현재 정부 임금실태의 조사 기능은 고용노동부, 통계청, 한국은행 등에 산재돼 있다. 이처럼 정책의 기초가 되는 통계가 통일돼 있지 않다 보니 특정 정치세력이 자기 논리 강화를 위해 필요한 통계를 골라 쓰는 ‘아전인수’도 난무한다.
정부 역시 이 같은 지적에 상당 부분 동의하는 분위기다. 한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정책 입안에 활용할 신뢰성 있는 임금 지표가 사실상 없는 상태”라며 “다른 경제 지표인 금리ㆍ환율ㆍ물가 등과 달리, 지금까지 정부가 소득과 직결되는 임금실태 파악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최저임금 인상만 봐도, 임금실태 분석을 위해 4가지 이상 임금 통계를 가공해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7년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임금실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기초 통계는 ▦사업체노동력조사(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고용노동부)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통계청) ▦가계동향조사(통계청) 등이다.
문제는 각 통계마다 조사의 주체, 대상, 시기 등이 모두 달라 정확한 임금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령 고용부가 사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는 민간 부문의 임금, 근로 시간은 상세하게 조사되지만 정부 부문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통계청이 가계를 대상으로 집계하는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는 세부 임금 내역과 근로시간이 조사되지 않는 점, 응답자의 기억에 의존하거나 가구원의 대리응답이 가능하다는 점이 맹점으로 꼽힌다.
이처럼 임금 지표가 제각각이면 사회적 합의가 필수인 정책 입안 과정에서 갈등 비용만 커질 수 있다. 실제 2013년 통상임금 산정 범위를 둘러싼 논쟁에서 기업이 부담해야 할 추가 비용을 놓고 노동계는 5조원, 재계는 38조원을 제시해 ‘뻥튀기’, ‘축소’ 공방이 오간 바 있다. 강승복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은 “임금 이슈는 늘 재계와 노동계가 서로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다양한 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통계청 관계자는 “단일화된 임금 지표가 있으면 혼란은 줄겠지만, 현재처럼 고용부와 통계청이 사업체와 가구를 개별 조사하는 게 양 지표의 비교를 가능케 하고 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노동 관련 이슈가 산적해 있는 만큼 국가 차원에서 임금 지표를 손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은 노동통계국을 따로 두고 공신력 있는 임금 지표를 생산한다”며 “차기 정부에서는 임금 지표 체계를 개편해 통계 기관과 지표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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