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장관 등 인사 파동에 정부조직 개편 시동도 못 걸어
해경 해체, 권한 조정 놓고 논란만… 특별법은 수사권 이견에 답보 상태
세월호 참사 한달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눈물을 흘리며 ‘국가대개조’를 약속했지만 누구도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박 대통령의 담화 이후 각종 후속 대책이 나왔지만 총리 인선을 비롯한 인사파동으로 정부조직 개편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국회의 세월호 특별법 입법 논의도 여전히 정쟁에 갇혀 진척이 없다.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나도록 정부나 정치권이나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인사파동으로 정부조직법 표류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한 달 만인 5월 1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고 해양경찰청 해체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 개편을 선언했다. 또 관피아를 척결하고 진실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것들과 비정상을 바로 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명운을 걸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거대한 구상은 인사파동으로 발목이 잡혔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국무총리 후임으로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으나 각각 전관예우와 민족 비하성 발언 논란으로 낙마하는 파동을 겪었다. 이후 고민 끝에 사퇴 의사를 밝힌 정 총리를 유임시켰지만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가개조 작업의 의지를 스스로 퇴색시켰다는 비판만 키웠다.
정부조직 개편과 맞물려 진행된 2기 내각 인사에서도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하면서 박 대통령은 국가 개조를 위한‘골든타임’을 놓쳐 버렸다.
물론 여야 정치권의 방해도 있었다. 정부는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밝힌 대로 총리실 산하에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고 해양경찰청 해체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지난 6월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야는 정쟁에 골몰하면서 전혀 의견 접근을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안전업무를 전담하는‘국민안전부’(가칭)의 신설과 소방방재청 및 해경의 외청화를 골자로 하는 별도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제시한 뒤로 여야는 공방만 거듭하고 있다.
정부는 이후 ‘국가개조’를 ‘국가혁신’으로 변경한 데 이어 ‘국가혁신 범국민위원회’의 청사진을 내놓으며 재차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달 초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혁신 범국민위원회’를 출범시켜 공직개혁과 안전혁신, 부패척결, 의식개혁 등 분야별로 국가혁신을 위한 국민의견을 폭넓게 수용해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후속 입법 조치들이 선행되지 못할 경우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소방방재청과 해경 해체 논란
정부조직법 개정안 중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소방 공무원의 신분 문제와 해경 해체 부분이다. 특히 전국 시도 소속 지방공무원 신분이 대부분의 소방 공무원들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계기로 국가직으로의 전환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난제가 되고 있다. 소방공무원 4만 여명 중 대부분이 지방직 공무원이고 극히 일부만 소방 방재청 소속의 국가직 공무원인 상황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방직 공무원의 신분은 그대로 유지한 채 국가안전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지휘를 동시에 받게 된다. 때문에 재난 대응에 대한 효율성과 지휘 체계 일원화 등을 이유로 소방공무원들은 1인 시위까지 벌이면서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는 지방분권에 역행하는 추세라는 이유 등을 들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해경 해체도 난제의 하나다. 정부안에 따르면 해경의 수사ㆍ정보 기능은 경찰청에서 흡수하고 해양 구조와 경비 등은 국가안전처로 넘어간다. 하지만 그럴 경우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단속 등에 있어서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해경 해체에 반대하고 있다. 논란 끝에 정부에서 해경에 초동 수사권을 존치시키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향후 범위나 권한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세월호 특별법은 ‘수사권’ 문제로 표류
세월호 참사 후속 조치로써 상징적인 의미가 큰 세월호 특별법은 유가족들과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 속에서도 정치권은 각종 쟁점사안에서 이견만 노출한 채 합의할 기미가 없다. 수사권 문제의 경우 새정치연합은 진상조사위에 특별사법경찰관을 배치해 조사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새누리당은 사법 체계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이유로 수사권 부여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사위 구성도 새누리당은 여야 추천권을 배제한 채 3부 요인(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과 세월호 희생자 가족 측이 추천하는 인사로 꾸리자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여야 추천권을 살려야 정부·여당에 편향된 인적 구성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결 정족수도 여당은 조사위의 3분의2 찬성으로 안건을 의결하자고 주장하지만 야당은 과반 찬성을 요구하고 있다
참사 100일째인 24일을 데드라인으로 잡은 여야는 23일에도 막판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새정치연합은 특별법에 따라 구성될 진상조사위에 여야가 합의한 특별검사를 포함시켜 자료제출을 확보하는 수준의 제한적 수사권을 부여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새누리당은 조사위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자체가 사법체계를 흔드는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논의에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피아 척결 법안, 다른 대책도 지지부진
관피아 척결과 맞물린 핵심 법안인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의 경우 여야가 대가성 및 직무관련성과 상관없이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은 공직자를 형사처벌한다는 원안에 의견을 모은 상태다. 하지만 형사처벌 대상 공직자의 범위를 두고 여야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유병언법’(범죄은닉재산환수강화법안)은 지난 8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돼 법안소위에 회부됐으나 아직 본격적인 심의테이블에 오르지 못한 상태다. ‘안대희법’(전관예우 금지 및 공직자 취업제한 강화법안)에 대해서도 여야가 의견차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논의 진행 과정에서 적용 범위 등을 두고 입장차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어 국회 통과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각종 대책관련 조치도 지지부진하다. 세월호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 화물과적을 막기 위해 해양수산부가 이달부터 카페리에 싣는 화물차량의 무게를 일일이 재고, 과적 차량의 선적을 제한하기로 한 계획은 화물운송업계 등의 반발로 일단 보류됐다. 교육부도 장관 교체가 늦어지면서 수학여행 대책 외에 ‘학교안전종합대책’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개방형직위제의 내실 있는 운영과 관련해 민간인으로 구성된 ‘개방형직위 중앙선발시험위원회’ 설치 및 전문성이 필요한 직위에 순환근무를 제한하는 ‘직위유형별 보직관리제도’ 시행 등 일부 대책에서는 진전을 보이고 있다.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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