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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집은 月 100만원… 주거비에 질식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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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집은 月 100만원… 주거비에 질식할 지경"

입력
2015.08.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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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지는 전세의 월세 전환

주거비 1년새 20%나 폭등

사회 위험요소 불똥 소지

결혼·출산 꺼리고 세대간 마찰

오피스텔에서 신혼을 시작한 회사원 박민호(33)씨는 11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주말마다 전셋집을 보러 다니느라 고역이지만 3개월째 소득이 없다. 박씨는 “직장과 가까운 강서구, 은평구, 일산 등을 뒤져도 전세는 아예 찾기가 힘들다”며 “외벌이라 월급에 맞춰 30만원 이하 월세라도 구해봤지만 매물이 나와 있지도 않다”고 토로했다. 포털이나 부동산 앱에 마음에 드는 매물이 올라와 전화해보면 벌써 나갔다는 대답이다. 그는 “미끼로 전세 매물을 올려놓고 월세를 권하는 게 열에 여덟 건”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월세 시대에 20, 30대는 더 죽을 맛이다. 사회 생활을 이제 시작한 이들에게 돈을 모을 기회가 더 줄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전세금은 비싸더라도 대출을 갚아나가는 동안 내 돈이 되지만 월세는 주거비용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만기를 앞두고 전세금을 너무 많이 올리는 바람에 새 집을 구하러 다니고 있는 직장인 김상원(35)씨는 “겨우 어린이 집에 적응한 두 돌 된 딸 때문에 서울 강동구 집 근처에 구하려 하는데 엔간한 집은 100만원이 넘는 월세를 요구하고 있다”며 “저축할 돈이 남아 나겠느냐”고 말했다.

사실 전세금을 월세로 낼 때 적용하는 이자율을 뜻하는 ‘전ㆍ월세 전환율’이 지나치게 높게 설정돼 있다. 지난 6월 서울의 주택 전ㆍ월세 전환율은 7.5%. 3억원짜리 전셋집의 경우 집주인이 계약 기간 만료 후 추가로 올린 7,000만원을 월세로 받고자 하면 세입자는 연간 525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매달 44만원가량이다. 그러나 7,000만원을 시중은행에서 전세금 대출(금리 3%)로 돌리면 연간 이자로 210만원만 부담하면 된다. 신용에 따라 2% 초반 금리도 가능해 절반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입자로서는 당연히 전세가 이득이지만 집주인이 월세를 요구하면 집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에 전세의 월세 전환은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ㆍ월세 거래 중 월세 비중은 2012년 50.5%로 절반을 넘어섰고, 지난해는 55%를 기록했다. 주거비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주거비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8% 올랐다. 10년 전인 2005년 2분기와 비교하면 가계 주거비 지출 규모는 10년 만에 89%나 증가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7.6%인 것에 비춰보면 증가 폭이 너무 크다. 전ㆍ월셋값이 동반 상승한 탓이 크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과 교수는 “소득대비 월세 부담이 너무 크다”며 “신세대(임대인)와 구세대(임차인)간의 갈등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 역시 주택난을 겪었지만 열심히 돈을 벌어 주택을 살 수 있었고, 집값 상승기에 재산을 축적했다. 그러나 보유자산도 없고 자산을 축적할 가능성도 낮은 상태로 사회에 던져진 청년세대는 기성세대가 만든 부동산 버블과 월세에 갇혀 숨도 쉬기 힘들게 됐다는 진단이다.

청년세대의 주거문제는 심각한 부작용을 부른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거비용 부담은 결혼을 꺼리는 요인이 되며 곧 저출산 등 사회 유지 문제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설비 일을 하는 김주원(30)씨는 “한 달에 150만원 남짓 벌어 저축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결혼해서 전셋집 장만하기도 힘들 것 같다”며 “결혼은 하더라도 애는 안 낳을 생각”이라고 했다.

정부에서 저금리 대출 등 대책을 내놓지만 청년층의 소득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 근본 해결책이 못 된다. 조 교수는 “선진국치고 임대료를 통제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며 시장에서 풀기 쉽지 않은 주택문제는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뉴욕시는 임대료 상승률을 1년에 1%, 2년 2.75%로 제한했고, 독일 베를린시도 평균보다 10% 이상 인상하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물론 우리도 임대료 상한규정(5%)이 있지만 집주인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청년주거협동조합 ‘민달팽이 유니온’ 조합원들이 출자금 8,200만원과 서울시 기금을 모아 장기 임대한 서대문구 남가좌동 빌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빌라 두 채(14~18평형)를 주변 시세의 60% 가격으로 임대하는 등 새로운 주거실험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서울 거주 청년 10명 중 3명 이상이 ‘주거 빈곤층(최저주거기준 면적이 14㎡에 미달 혹은 독립된 방 부재 등)’에 해당된다며 적극적인 정부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민달팽이 유니온 제공
청년주거협동조합 ‘민달팽이 유니온’ 조합원들이 출자금 8,200만원과 서울시 기금을 모아 장기 임대한 서대문구 남가좌동 빌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빌라 두 채(14~18평형)를 주변 시세의 60% 가격으로 임대하는 등 새로운 주거실험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서울 거주 청년 10명 중 3명 이상이 ‘주거 빈곤층(최저주거기준 면적이 14㎡에 미달 혹은 독립된 방 부재 등)’에 해당된다며 적극적인 정부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민달팽이 유니온 제공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정책이 도입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최장 8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장기 임대주택 ‘뉴스테이’의 경우 임대료가 비싸 서민들은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이고,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을 위한 ‘행복주택’ 역시 입주 대상에 미취업자 등 구직청년은 제외돼 있다. 더욱이 공급량도 적어 체감효과는 크지 않은 상황이다. 5% 정도에 불과한 공공임대주택 보급률을 OECD 수준(20%)으로 대폭 확대하는 등 주거약자를 위한 획기적인 대책 마련 필요성도 제기된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은 “전셋값도 치솟고 월세전환 비용이 높아지면서 사회 초년생들의 주거비용이 높아지는 건 사회적으로도 불안 요소가 된다”며 “주택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게 전ㆍ월세 문제의 근본인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집값을 떠받치는 과정에서 청년세대에 불똥이 튄 측면도 크다”고 지적했다.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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