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할머니들 "진전없어 실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7월까지 진정한 사과가 없으면 미국 법원에 2,000만달러(약220억원)의 손해배상 집단소송을 내기로 결정했다.
피해자 할머니와 유족 등으로 이뤄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미국소송 실행위원회’는 23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경위와 의미를 밝혔다. 할머니들은 최근 한일수교 50년을 맞아 양국이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상황에서도 위안부 문제엔 진전이 없다며 실망과 분노를 표출했다.
이번 소송을 대리해 진행하는 김형진 변호사는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 등 총리의 의견 표명이 일본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왜곡되거나 축소되는 현상이 매번 되풀이되고 있다”며 “국제소송을 제기해 일본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는 방안을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실행위에 따르면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 법원에 제기할 2,000만달러의 손해배상 집단소송엔 나눔의 집에 살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0명과 피해자 유가족 2명 등이 원고로 나설 예정이다. 피고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 일왕을 포함한 일본 왕실, 미쓰비시중공업 등 미국에 진출한 전범기업,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라 비하한 산케이신문 등을 포함해 최대 1만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변호사는 “2000년 워싱턴 법원에서 패소했을 때와 달리 르완다ㆍ유고 등 내전으로 인한 전시 중 성폭력에 대한 국제법상 판례가 어느 정도 쌓였다”며 “승소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께 사과하고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을 찾는다면 소송을 취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 변호사는 “소송 준비는 두 달 전에 마쳤지만 제소하지 않은 것은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다리기 때문”이라며 “생존 할머니들이 몇 분 남아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 시간이 촉박해 일본 정부의 답변 기한을 7월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0만달러라는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중요하지 않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위안부 피해자인 유희남, 이옥선, 강일출, 박옥선 할머니와 위안부 피해자 유족회 양한석(고 김순덕 할머니 아들), 왕상문(고 최선순 할머니 아들)씨 등 9명이 참석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과거에는 우리 힘이 모자라 한국을 뺏겼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느냐”며 “우리 문제를 우리 할머니들이 나서서 해야 하는가. 정부가 있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38명이며, 이중 생존자는 50명이다.
이태무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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