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대구서 딸 납치 당한 부모
협박전화 받고 신고했지만
도주로 차단·검문·검색도 안하고
피해자 집서 낮잠, 술까지 마셔
대법 “9700만원 보상”원심 확정
“딸을 인질로 데리고 있으니 낮 12시까지 현금 6,000만원을 딸(당시 24세)의 계좌로 입금해라.”
2010년 6월 23일 오전 7시 46분, 납치ㆍ살인범 김모(당시 25세)씨가 A씨의 부모에게 협박전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의 집에서 낮잠을 자고 술까지 마셨다. 김씨는 같은 날 오후 9시쯤 A씨를 무참히 살해했다. 경찰은 불안해 하는 가족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술을 권한 후 마셨다고 해명했지만 A씨의 어머니는 “경찰 간부가 오후 4시쯤 여경을 시켜 술을 사오게 하고 내가 술상까지 차려줬다. 이 간부는 오전 11시쯤 소파에 앉아 1시간 가량 잠을 자며 코까지 골았다”며 분노했다.
김씨 재판과정에서 경찰의 어설픈 검거작전은 낱낱이 드러났다. ▦A씨가 살해되기 전 김씨가 대구 달서구 일대에서 6차례에 걸쳐 그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며 배회했지만 체계적인 검거 계획조차 세우지 않은 점 ▦도주로를 차단하지도 않은 채 김씨의 차량 검문을 시도하다 놓친 점 ▦주요 고속도로 톨게이트 등에서 검문ㆍ검색을 실시하지 않은 점 등이다. 경찰의 추격을 따돌린 김씨는 A씨가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어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고속도로를 타고 경남 거창으로 이동했다. 끈으로 목을 조르고 양발로 얼굴과 목 등을 밟아 A씨를 죽이고 시신을 배수로에 버린 후 김씨는 다시 대구로 돌아왔지만 단 한번도 검문ㆍ검색을 받지 않았다.
김씨는 불과 일주일 전에도 다른 20대 여성을 납치하려 했다. 같은해 6월 16일 오전 3시 김씨는 지나던 행인 B씨의 무릎을 차로 친 후 핸드백과 지갑 등을 빼앗고 강제로 차에 태워 목을 조르고 무차별 폭행했다. 다행히 탈출에 성공한 B씨는 112에 신고했지만 현장에 출동한 대구 수성경찰서 지산지구대 소속 경찰은 납치미수 사건이 아닌 단순 상해 사건으로 축소 보고했다. 수성경찰서는 이를 알고도 수정하지 않은 채 적극적인 수사에 임하지 않은 것으로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경찰이 미적거리는 사이 김씨는 B씨 사건 현장에서 불과 70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A씨를 납치했고, A씨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A씨가 살해된 다음 날 오후 7시쯤 주거지 부근에서 붙잡힌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A, B씨 사건 외에 강도 상해 등 다른 범죄 혐의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같은 해 5월 김씨는 대구 남구의 H호텔에서 커피배달을 온 여성을 미리 준비한 나무몽둥이 등으로 폭행한 후 현금 10만원을 빼앗은 것을 비롯해 슈퍼마켓과 분식집 현금통 절도, 차량을 이용한 날치기, 번호판 절도 등 한 달여간 대구 일대에서 폭주하듯 범행을 저질렀지만 민중의 지팡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김씨는 강도살인ㆍ강간ㆍ상해,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2011년 5월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5년이 지나서야 경찰의 과실에 따른 국가의 책임이 인정됐다. 대법원은 A씨의 부모와 동생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피해자 가족에게 9,700여만원을 보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앞서 원심은 A씨의 사망으로 인한 일실손실 및 위자료 등의 총 손해 비용을 3억2,300여만원으로 산정하고 국가의 배상책임을 30%로 제한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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