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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중년의 청춘들을 위한 변명

입력
2015.10.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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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 그들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집약하고 있는 세대다.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나 ‘잘 살아보세’의 성장 구호와 ‘새마을운동’을 노래하며 학교를 다녔다. 경제성장과 민주화 세례를 받은 세대이면서도 외환위기로 삶의 위험을 경험해야 했던 질곡 속의 세대다. 50대 초중반인 그들은 대부분 가정 경제의 책임을 전담하는 유일 소득원이며 평균 2명의 대학생 자녀를 둔 가장이다.

말 그대로 한 눈 팔 겨를 없이 열심히 살아온 세대인데 작금의 처지는 초라하고 불안하다. 일자리에 앉아 아들딸의 구직 기회를 빼앗고 있는 염치없는 기득 계층으로 손가락질 당하는 현실이 불편하고, 구조조정이나 조직 개편의 과정에서 직장을 떠나는 동료들을 바라보는 일도 가슴 아프다. 노동시장개혁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소위 저성과자 해고 문제도 불안을 더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찜찜한 느낌으로 치자면 대기업 임원이건, 철밥통으로 상징되는 공무원이건 사정이 다르지 않다. 1차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대기업 임원들의 평균 연령은 계속 낮아지고 있으며, 고위직 공무원의 퇴직 연령도 53~55세로 떨어졌다. 예전 같으면 협력회사나 유관기관으로 전직할 기회라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어려워진 형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차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중고령 근로자들이 향하는 곳은 재취업시장이다. 2015년 OECD 고용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고령 근로자 고용률은 79.6%로 일본(81.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OECD 평균이 65.1%이니 그 보다 14.5%나 높다. 사회 안전망이 취약하고 복지의 대부분을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 처지에서는 당연한 결과다.

이들 중년 노동력의 1차 노동시장 은퇴연령은 평균 53세지만,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연령은 71.1세다. 1차 시장 이탈부터 최종 이탈까지 20년 가까이 실업과 고용이 반복되는 불완전 취업상태가 지속되는 셈이다. 2014년 우리 노동시장 내 중고령 근로자의 49.5%는 단시간, 임시직 노동자였으며, 노동이동률은 연평균 50%에 달했다.

베이비부머의 규모가 대략 710만명이니 이들의 불안은 곧 사회적 위험이다. 무엇보다 가장인 중년 노동력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배려가 절실한데 현실에서 그들은 개혁의 대상이다. 세대의 사명으로 권위에 저항했던 그들은 마음 한구석에 젊음의 기쁨과 낭만의 소중한 욕망을 숨기고 있는 여전한 청춘이며, 튼튼한 체력으로 무장된 혈기왕성한 노동 시민이다. 그들의 처지에서 은퇴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며 양보는 억울하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바란다면 그들의 역할과 가치를 진심으로 이해해야 하며, 자존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와 국회는 중고령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과 경제활동 기회 확대를 위한 방안 모색에 집중해야 한다. 내년부터 단계적 적용이 예정된 ‘60세 정년’이 의도에 맞게 실현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침묵하는 다수의 고민과 불안을 경청해야 한다.

기업은 중장년 노동력을 위한 직무 개발에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의 대부분은 60세 정년 입법에도 불구하고 인사관리 시스템의 개편에 자원을 집중하지 않았다. 정년 법제화 비용을 관리할 유일한 수단으로 임금피크제에 많은 기대를 걸었으나 이는 한시적 조치이며 그 기능도 제한적이다.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직무를 개발하고 구성을 조정해 중장년 근로자들의 역할이 실질적으로 모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기업은 1차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근로자들을 위해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ㆍ활성화해야 한다. 1차 시장 이탈자들의 대부분은 장기 근속에 따른 숙련의 기업 특수적 속성으로 인해 전직이 용이하지 않은 노동력들이다. 중장년 은퇴 근로자들이 자영업 시장에서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자영업과 취업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전직을 위한 체계적 지원이 모색되어야 한다.

노동시장 개혁이 시대의 요청이나 710만 베이비부머들의 역사적 기여에 대한 인정 없이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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