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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뭐 하지?" 생존을 위한 아빠의 몸부림

입력
2015.01.2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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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겼다. 지쳐 쓰러져 잠드는 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요즘 잠을 자주 설친다. 물론, 휴직 전에도‘내일은 뭘 쓰나’하는 고민에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진심!), 요즘엔 ‘내일은 아들이랑 어디 가서 뭘 하고 놀아야 하나’하는 걱정에 한참을 뒤척인다.

다른 사람이 보면 그야말로 복에 겨운 고민일 텐데, 지금은 아들과 노는 게 업이고, 이 일 역시 매일 반복되다 보니 즐거움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 내일은 뭘 할까, 하는 고민은 내일은 뭘 쓸까, 하던 걱정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고통이다.

매일 뭘 할까 고민하며 아들과 돌아다니는 이 아빠에게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그렇게 해줘도 나중에 기억 하나도 못한다. 다 소용 없다.’ 그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아들이 기억해주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아들이 이 순간 순간을 즐겁게,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다.’사진은 지난 초가을 찾은 설악산 권금성에서.
매일 뭘 할까 고민하며 아들과 돌아다니는 이 아빠에게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그렇게 해줘도 나중에 기억 하나도 못한다. 다 소용 없다.’ 그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아들이 기억해주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아들이 이 순간 순간을 즐겁게,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다.’사진은 지난 초가을 찾은 설악산 권금성에서.

7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하면서, 그 중 아내 복직 후 5개월은 단독으로 아들을 보면서 터득하게 된 것 중 하나는 아들이 먹고, 놀고, 잠자는 데 절도가 있어야 이 아빠가 좀 편하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노는 일이다. 화끈하게 놀지 못하면 먹는 데 박력이 없고 잠이 들어도 자다 깨다를 반복하게 돼 이 육아노동자의 업무 강도는 배가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아빠의 하루는 그야말로 피곤 그 자체였다. 7시쯤 일어나는 아들은 오후 2시가 넘도록, 그러니까 7시간 동안 낮잠 한번 안 자 이 아빠를 폭발직전으로 여러 번 몰았다. 아들과의 그 7시간은 대략 이렇게 흘러간다.

아들이 일어나면 기저귀를 간다. 밥을 안치고 같이 논다. 밥이 될 즈음 간단한 반찬 한 두 가지(데친 두부, 계란말이 등)를 더 만들어 밥을 먹인다. 콧물을 흘리거나 하면 약까지 먹인다. 씻기고 양치질을 시킨다. 응가를 하면 또 씻겨 기저귀를 갈고 새 옷을 입힌다. 여기까지 대략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린다. 그 다음 본격적으로 논다. 추워서 장소는 대개 집이다. 동요가 흐르는 가운데, 장난감을 총출동시켜 밀고 던지며 논다. 미끄럼틀, 스프링카, 지붕카, 흔들말, 바퀴 달린 말 등등 탈것들을 중간중간에 탄다. 그래도 무료한 아들은 타이호(타요), 뽀(로로), (로보카)폴(리) 소리를 낸다. TV를 켜달란 소린데, 이를 꺾기 위해 아빠는 책을 펼쳐 든다. 일반적인 그림책, 동화책, 팝업북, 스티커북, 오디오북, 사운드북 등등. 여기에 괴상한 소리와 몸짓까지 동원해 아들의 집중을 유도한다. 이렇게 놀아도 시간은 아직 11시가 안됐다. (군대 이후로 이렇게 시간이 안 갔던 적이 없음.)

문제는 공을 들여도 아들은 시큰둥하다는 것. 책 몇 권까지는 들어주는 척하다가도 어떤 책을 읽어줄라 치면 책장을 휙휙 넘겨버린다. 다 아는 내용이니 집어치우란 뜻이다. 짜증을 낸다. 놀이터 가자며 현관으로 잡아 끈다. 밖은 추우니, 무릎에 앉혀 휴대폰을 보여줘야 할 때다. 앨범을 연다. 사진마다 얼토당토아니한 ‘썰’을 풀어가며 사진을 본다. 중간에 껴있는 (자신을 찍은)동영상은 무수히 재생한다. 앨범 사진이 바닥나면 다시 TV를 켜달라고 칭얼거린다. 배가 고파서 그럴 수 있겠다 싶어 먹이지만 잘 먹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정말 어쩔 수 없이) DVD를 튼다. 아는 게 나오면 손짓에 고함 질러가며 비교적 양호한 모습으로 놀지만 그것도 길어야 20분. 이후엔 소파에 누운 채 반쯤 감긴 눈으로 화면을 본다. 이 지경의 아들을 발견하고 재워보려 하지만 그대로 자는 경우는 없다. 잠은 오는데 잠들지 않는, 잠투정이 시작된다. 빨리 재워버리고 내가 쉬기 위해서라도 안아 재운다. 오후 2시가 약간 넘은 시각이다. 어깨와 목 허리 통증이 아들 옆에 눕게 만든다. 집은 그야말로 소마구(외양간ㆍ경상도 사투리)가 된다.

지난 주말 많은 인파를 피해 아침 일찍 달려간 인천의 한 눈썰매장에서. 이곳에서 아들은 2시간 정도 까르르대며 놀았는데, 이후 내리 3시간을 잤다. 그 사이 이 아빠는 설거지와 집안 청소를 끝냈으며, 1시간 정도의 휴식이라는 호사도 누렸다.
지난 주말 많은 인파를 피해 아침 일찍 달려간 인천의 한 눈썰매장에서. 이곳에서 아들은 2시간 정도 까르르대며 놀았는데, 이후 내리 3시간을 잤다. 그 사이 이 아빠는 설거지와 집안 청소를 끝냈으며, 1시간 정도의 휴식이라는 호사도 누렸다.

아들이 7시간 동안 안 자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했다. 노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냈다. 아들이 화끈하게 놀지 못했다는 것이다. 에너지 발산이 제대로 안되니 웃을 일이 적고, 무료하지만 에너지는 남아돌아 잠은 자지 않는다. 남은 에너지는 투정과 짜증으로 발현됐다. (이 아빠가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웬만하면, 아들을 데리고 밖으로 도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수많은 하루 일정 중 도드라진 이벤트 하나 만들어 거기서 진을 빼게 하기 위한 전략이다. 아들이 여기서 실컷 놀면 잠을 길게 깊이 자고, 자고 일어나 밥도 잘 먹으며 이후 더 잘 논다. 메인 이벤트가 성공하면 이후 시간은 평온 그 자체다. 아들이 길게 자는 덕분에 이 육아노동자에게도 약간의 달콤한 휴식이 허용되고, 기력을 되찾은 이 아빠가 더 잘 놀아주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내일은 뭘 할까, 하는 고민은 이 메인 이벤트에 대한 고민이고 어떻게 하면 내일은 이 아빠가 좀 쉴 수 있을까, 하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행복에 겨운 고민이 아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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