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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인 척, 결혼하객 품앗이… 먹튀에 발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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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인 척, 결혼하객 품앗이… 먹튀에 발동동

입력
2016.03.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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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준비 커뮤니티 통해 처음 만나 돌아가며 임시 친구 돼 주기

하객 알바와 달리 상부상조 형식

본인 결혼식 끝나면 연락 끊고 잠적… 얌체족 방지 위해 보증금 걸기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서울에서 예식을 치른 이수민(31)씨는 아직도 결혼 날만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 고향이 울산인 이씨는 친구들이 오지 못한다는 소식에 결혼 준비 커뮤니티에서 ‘결혼 품앗이’를 신청했다. 결혼 품앗이는 결혼 시기가 비슷한 이들끼리 돌아가면서 서로의 결혼식을 빛내줄 ‘임시 친구’가 돼 주는 것이다. 이렇게 모인 인원은 모두 6명. 이씨의 순서는 가장 마지막이었다. 결혼에 앞서 예비신부 6명은 연락처를 공유하고 모임도 가지며 친분을 쌓았지만 정작 이씨의 결혼식에 온 사람은 2명뿐이었다. 두 명은 아예 전화도 받지 않았고 한 명은 ‘집에 일이 있어서 못 간다’는 문자만 보냈다. 이씨는 18일 “결혼 준비로 바빠도 허전한 결혼식이 싫어 주말을 쪼개가며 생판 모르는 남의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며 “불쾌한 기분에 신혼여행까지 망쳤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결혼 시즌이 다가오면서 20,30대 여성들이 많이 찾는 각종 커뮤니티에 하객 품앗이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루에 10여건 넘게 꾸준히 문의가 오고 4,5월 예식의 경우 일찌감치 인원이 마감될 정도다. 하지만 품앗이를 약속한 뒤 본인 결혼식이 끝나면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이른바 ‘먹튀’가 심심찮게 발생해 새내기 부부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결혼 품앗이는 외형을 중시하는 우리의 결혼식 문화가 낳은 새로운 풍속도다. 결혼식이 원만한 사회생활 여부를 보여주는 지표로 자리잡은 탓에 예식 장소가 멀어 하객이 적거나 친구가 많지 않은 예비 신부들이 이렇게라도 친구를 급조하는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지인인 척하는 점은 하객 아르바이트와 다를 바 없지만 하객을 고용하는 것이 아닌 ‘계’와 같은 상부상조 방식이라 거부감이 덜하다. 결혼 당일의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예식에 앞서 친목을 다지며 얼굴을 익히기도 한다.

하지만 먼저 식을 치른 신부가 정작 자신이 품을 갚아야 할 때 나타나지 않아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양모(30)씨도 품앗이를 약속하고 지난달 다른 회원의 결혼식에 참석했지만 결혼을 앞두고 날짜를 재공지하기 위해 전화를 해보니 바뀐 번호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양씨는 “이름도 얼굴도 아는데 잠수를 타니 어이가 없었다”며 “경찰에 신고하려 해도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런 얌체족을 방지하기 위해 최근엔 각자 10만~20만원 가량의 돈을 걷어 마지막 회원의 예식이 끝날 때 돌려주는 ‘보증금 제도’를 도입하고, 사전에 휴대폰 메신저를 통해 단체 모임을 가진 뒤 오프라인 모임에서 명함까지 교환하며 신원을 재차 확인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품앗이 먹튀는 결국 하객 수를 인간관계와 동일시하는 허례허식 풍조가 부추긴 부작용이라고 진단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체면 중시, 보여주기식 문화와 이기주의가 맞물려 결혼 품앗이와 먹튀로 이어진 것”이라며 “시대 변화와 점차 개인화하는 젊은 세대의 현실에 맞게 결혼 문화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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